"알리보다 2배 더"…손실도 감수한다는 쿠팡, '통 큰 투자' 이유는?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24.03.2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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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국내 1.5조 투자계획 공개하자 3조원대 신규 투자로 대응
배송물량 적은 인구소멸지역까지 손실 감내한 투자
알리 취약한 국내 배송 경쟁력 및 멤버십 서비스 부각

쿠팡 김범석 의장. /사진=머니투데이DB쿠팡 김범석 의장. /사진=머니투데이DB


쿠팡이 27일 3조원대 신규 투자 계획을 전격 발표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 국내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중국 이커머스 기업의 공세를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발표 시기와 투자 규모를 고려하면 국내 1등 이커머스로서 입지를 굳히겠다는 '초격차' 전략이 엿보인다.

알리 1.5조 투자 발표 2주 만에 2배 큰 투자 계획 발표한 쿠팡
알리익스프레스 모회사인 알리바바그룹은 지난 14일 한국에 3년간 11억달러(약 1조45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사업 계획서를 공개했다. 18만㎡의 통합물류센터(풀필먼트)를 구축하고, 대규모 할인 행사 및 셀러 발굴, 소비자 보호 대책 등이 담겼다. 중국에 쌓여있는 초저가 상품을 해외직구로 판매하는 방식을 넘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자체 물류망을 만들어 기존 업체들과 경쟁하겠다는 의미다.



쿠팡은 이 계획이 공개된 지 2주 만에 이보다 2배 많은 3조원대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이대로 투자를 집행하면 지난 10년간 투자한 6조2000억원에 더해 총 9조원대 자금을 풀필먼트센터(FC) 확장, 첨단 자동화 기술 도입, 배송 네트워크 고도화 등 물류망 확충에 쓰게 된다.

이번 투자로 2026년까지 경북 김천, 충북 제천, 경기 이천, 충남 천안, 부산, 대전, 광주, 울산 등 8곳 이상 지역에 신규 FC가 구축되면 2027년부터 전국의 모든 지역에 로켓배송이 가능한 물류 시스템이 완성될 전망이다. 쿠팡은 "3년 뒤엔 전국 5000만 인구가 주문 하루 만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료로 배송받는 시대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쿠팡이 2026년까지 3조원대 신규 투자를 진행하면 전국에 로켓배송 서비스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사진제공=쿠팡쿠팡이 2026년까지 3조원대 신규 투자를 진행하면 전국에 로켓배송 서비스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사진제공=쿠팡
알리는 국내 투자 중 약 2000억원을 FC 구축에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 규모로는 수도권에서도 신속한 배송이 녹록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알리가 수도권에 대형 FC 1~2곳을 확보해도 외곽 지역은 신속·무료 배송 서비스가 제한되는 곳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쿠팡 외에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신속배송 서비스를 수도권과 지방 거점 대도시로 제한한 것은 손실이 우려돼서다. 하지만 쿠팡은 내륙 교통이 취약한 도서 지역은 물론 인구 3만명이 붕괴한 지역소멸 우려 지역까지 배송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런 지역은 물동량과 비용을 고려하면 영업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쿠팡은 "전국 물류망을 갖춘 독보적 기업"이라는 상징성을 공고히 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쿠팡의 신규 투자로 새롭게 로켓배송 지역으로 편입되는 곳은 대부분 경상·전라·충청·강원 등 지방 인구감소지역의 70%(약 60곳)에 육박한다. 현재 이들 지역 중 17곳에 로켓배송이 시행 중인데, 3년 안에 나머지 43곳도 서비스 구역에 포함된다. 이곳은 대형마트 접근성도 열악해 주민들이 한 달에 한 두번씩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에서 식품과 생필품을 사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손실 무릎쓰고 지역 물류망 확장 선택한 쿠팡...사회적 효용 더 크다
쿠팡은 이들 지역으로 로켓배송을 확대하면 당장은 손실이 나겠지만, 지방 물류 인프라 확장에 따른 사회적 효용 증대 효과가 크다는 입장이다. 쿠팡 관계자는 "쇼핑 인프라가 부족한 인구감소 지역에 로켓배송이 생기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 백만개 이상의 로켓배송 상품을 지방 도서·산간 지역에서도 쉽게 구하고, 무료 로켓배송과 반품을 이용해 장보기에 드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도서·산간 지역에 3000~5000원의 추가 배송비가 부과되며, 반품 시 5000원 상당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쿠팡 유료 서비스인 와우 회원으로 가입해 한 달에 4990원을 내면 로켓배송 및 반품 서비스를 모두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쿠팡이 대규모 신규 투자를 통해 인구소멸 지역, 도서산간지역으로 물류망을 확충한다. /사진제공=쿠팡쿠팡이 대규모 신규 투자를 통해 인구소멸 지역, 도서산간지역으로 물류망을 확충한다. /사진제공=쿠팡
전문가들도 쿠팡의 전국적인 물류 인프라 확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김찬호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고령화로 인한 지방 소멸 문제는 당장 해법을 찾아야 할 시급한 과제"라며 "필수라고 여기던 기존 인프라 없이도 생활이 가능해야 하는 지방에서 쿠팡이 구석구석까지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면서 중요한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료 멤버십 혜택 다양화도 중국 이커머스 업체와 차별화한 쿠팡의 전략으로 꼽힌다. 쿠팡은 지난해 와우 회원에게 무료 배송과 쿠팡플레이 콘텐츠, 상품 할인 등으로 약 4조원의 혜택을 제공했다. 무료 배송·배달·반품·직구 및 쿠팡플레이 무료 시청 등 '5무(無)' 서비스의 높은 효용성을 입증한 것.

쿠팡이 중국 이커머스 공세에 대규모 추가 투자로 맞불을 놓으면서 국내 유통 시장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신세계, 롯데 등 전통의 유통 강자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이커머스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자제하고 본업인 오프라인 매장 육성에 주력하면서 이커머스 시장에선 쿠팡의 새로운 경쟁자로 알리와 테무가 부각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쿠팡과 중국 이커머스 업체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계 일각에선 2010년 창립 후 13년 만인 지난해 첫 연간 흑자를 달성한 쿠팡이 대규모 신규 투자로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쿠팡은 단기적으로 비용 증가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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