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탄소 감축 기여도 전망/그래픽=윤선정
전 세계적 넷제로 전환을 맞아 전기화가 새 화두로 떠올랐다. 주방, 냉·난방 시설을 전기로 돌리는 고전적 의미의 전기화가 아니다. 막대한 열 에너지가 필요해, 석유와 가스 등을 태울 수 밖에 없던 전통 제조산업의 전기화다. 주방에서 가스레인지가 인덕션으로 대체되는 것과 같은 과정이 전통 산업 현장에서 진행되는 셈이다. 현 시점에서의 전기화는 '모든 것의 전기화'이자 무탄소 에너지 전환과 맞물려 탄소배출 감축 속도를 더할 '넷제로 부스터'다.
쿨브룩의 사례는 비단 석유화학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석유화학 이상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철강 산업 현장에서도 전기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철강사 아르세로미탈은 2025년까지 전기로의 생산 능력을 1000만톤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고로를 전기로로 바꾸는 중이다. 전기로는 전기가 발생하는 열로 고철 등을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설비다. 코크스(석탄 가공 연료)와 가스를 때 쇳물을 만드는 고로보다 탄소배출량이 적다. 호주 철강사 리오 틴토와 BHP는 고철 대신 직접환원철(DRI)을 녹여 보다 고품질의 쇳물을 만드는 새로운 전기로인 ESF(Electric Smelting Furnace) 개발에 나섰다. 미국 보스턴메탈은 용융 산화물 전기분해(MOE) 기술을 개발 중이다.
서정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원은 "산업 현장의 전기화 자체만으로도 탄소감축 효과가 크다"며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대체되 가는 속도만큼 전기화의 탄소감축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산업계 전기화 추진 현황/그래픽=조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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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EU와 미국은 자국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세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동수 김앤장 ESG경영연구소장은 "탄소국경세는 우선 철강과 시멘트 등 부터 적용되지만 앞으로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제품들로 영역이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보다 전기화에 뒤처진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탄소무역 장벽이 갈수록 높아질 수 있는 셈이다.
한국은 2022년 정부가 집중 육성할 '한국형 탄소중립 100대 기술'에 철강 및 석유화학 전기로 기술을 포함시켰고, 철강 등 일부 산업 영역에서의 전기화 전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산업 현장에서의 전기화 전환 속도는 선진 시장에 비해 뒤처져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기화 전환과 기술개발 속도를 점검하고 탄소무역 장벽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석탄·가스 빠진 제철소…전기화 준비 마친 철강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 개요/그래픽=이지혜
철강은 현재 전기화가 초기 단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추진되는 산업 영역이다. '탄소배출의 주범'이라는 오명도 있는 만큼, 업계는 그동안 단계별 전기화 전환 시나리오를 마련했고 이를 실현할 기술을 숙성시켰다. 단계별 전환의 첫 단추가 탄소 배출이 많은 고로 대신 전기로를 늘리는 작업이다. 전기로는 전기로 생성된 열로 쇳물을 만드는 만큼 운용 과정에 석탄과 가스 연소가 필수적인 고로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다.
고로 중심의 대표적 철강사인 포스코는 지난달 하나의 신호탄을 쐈다. 전남 광양제철소에서 연산 250만톤 규모의 전기로 공장을 착공했다. 공사에는 6000억원이 투입된다. 2025년 말 준공하고 2026년부터 가동에 돌입하면 연간 최대 약 350만톤의 탄소 감축 효과가 발생할 전망이다.
사실 전기로 자체에는 특별히 진보된 기술이 적용되진 않는다. 후판과 형강 등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여 만든 제품의 수요가 오래전 부터 있었다.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전기로를 늘려나가는 셈이니 품을 안들이고 당장 추진 가능한 전기화인 셈이다. 하지만 철강업계의 전기화는 단순히 전기로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포스코는 광양 제철소 전기로에서 생산한 쇳물을 바로 활용하거나 고로에서 생산한 쇳물과 혼합하는 '합탕 기술'을 적용해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단일 전기로만으론 생산이 불가능했던 고급 철강재를 생산할 수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전기로 조업 중에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고철 예열에 사용해 에너지 효율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도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 생산 체제를 구축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기존 전기로를 활용해 저탄소화된 쇳물을 고로 전로공정에 혼합 투입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전기로 확대 다음 단계 준비에도 이미 나섰다. 고철 대신 직접환원철(DRI)을 녹여 보다 고품질의 쇳물을 만드는 새로운 전기로인 'ESF(Electric Smelting Furnace)' 개발이다.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은 전기로다. 호주 철강사 리오 틴토와 BHP도 개발 중인데 포스코에서 먼저 의미있는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포스코는 이미 비철금속을 녹이는 용도로 개발된 단일용량 세계 최대 ESF를 운용 중이다.
ESF는 단순히 전기화에만 기여하는게 아니다. 본격적 무탄소 철강시대를 열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핵심이 된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의 기반 기술인 '하이렉스(HyREX)'를 개발 중인데,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수소를 이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한 철을 ESF에서 녹여 쇳물을 뽑아내게 된다. 결국 수소환원제철은 철강 산업 전기화의 최종 진화형인 셈이다.
전기차의 동력원인 배터리 산업도 세계시장을 주도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미국과 유럽 곳곳에 가장 진보한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세계 모빌리티 전기화의 병참기지 역할을 한다. 지난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점유율은 27.8%로 1위였다. 건설기계 역시 전기화 물결에 올라탔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지난해 하반기 1.7톤 전기굴착기를 출시했고 HD현대건설기계는 올해 1.9톤 전기굴착기를 내놓을 예정이다. 양사는 2026년까지 3.5톤급을 출시해 전기굴착기 라인업을 확대하고, 14톤급 중형 굴착기 전동화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