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활활' 비행기, 추락 중 무전 끊겨…155명 살린 기장 '기지'[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2024.01.15 05:30
글자크기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9년 1월 15일 뉴욕시에서 허드슨 강에 추락한 후 물 위에 떠 있는 US 에어웨이 1549편을 확보하고 있는 구조대원들 모습./AFPBBNews=뉴스12009년 1월 15일 뉴욕시에서 허드슨 강에 추락한 후 물 위에 떠 있는 US 에어웨이 1549편을 확보하고 있는 구조대원들 모습./AFPBBNews=뉴스1


2009년 1월 15일. 고요하던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승객 150명, 승무원 5명을 태운 비행기가 불시착했다. 엔진이 모두 멈춘 상태였기에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모두 무사했다. '허드슨강의 기적'이었다.

구름이 거의 없는 날씨였던 이날 오후 3시25분쯤, US 에어웨이 1549 편은 미국 뉴욕 라구아디아 공항을 출발해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더글러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비상 착륙한 US 에어웨이 1549 편의 왼쪽 엔진에서 회수된 거위 깃털. 비행기가 새 떼와 충돌한 후 두 엔진의 동력이 모두 끊겼다는 것을 뒷받침한다./AFPBBNews=뉴스1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비상 착륙한 US 에어웨이 1549 편의 왼쪽 엔진에서 회수된 거위 깃털. 비행기가 새 떼와 충돌한 후 두 엔진의 동력이 모두 끊겼다는 것을 뒷받침한다./AFPBBNews=뉴스1
문제는 이륙 2분 만에 발생했다. 859m 상공을 날던 비행기가 갑자기 날아든 거위 떼에 부딪쳤고, 이 충돌로 비행기 엔진 2개는 동시에 멈춰버렸다.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엔진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연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엔진이 모두 멈춰 동력을 잃은 비행기는 천천히 추락하고 있었다.



이 비행기 기장은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체슬리 설렌버거(당시 57세)로, 총 비행 시간만 1만9663시간에 달하는 베테랑이었다.

기체에 문제가 생기자 설렌버거 기장은 이륙했던 라구아디아 공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고도가 낮아 회항하는 것도, 인근의 테터보로 공항에 착륙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동력을 잃고 활공 중인 비행기의 방향을 억지로 틀었다가는 그대로 추락할 수도 있는 위급 상황이었다.

허드슨강을 따라 활공하던 설렌버거 기장은 라구아디아 공항 관제사에게 "우린 허드슨강으로 간다"(We're gonna be in the Hudson.)고 알렸다.


이를 들은 관제사는 당황해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이내 "미안하지만 다시 말해달라"고 재무전을 요청했다. 이어 관제사는 "뉴웍공항도 있다"며 착륙 대안지를 찾아주려 했으나 비행기와의 무전이 끊겨버렸다.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으로 불시착한 US 에어웨이 1549 편 비행기의 모습이 당시 근처 항구 CC(폐쇄회로)TV에 포착됐다. 이날 오전 8시25분 비상 착륙 후 4분 만에 승객들이 비행기 날개 쪽에 올라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속 노란원). 허드슨 강의 통근 페리가 구조를 위해 다가오는 모습도 보인다.(오른쪽 아래 사진 빨간 원.)/사진=유튜브 채널 'AIRBOYD' 영상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으로 불시착한 US 에어웨이 1549 편 비행기의 모습이 당시 근처 항구 CC(폐쇄회로)TV에 포착됐다. 이날 오전 8시25분 비상 착륙 후 4분 만에 승객들이 비행기 날개 쪽에 올라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속 노란원). 허드슨 강의 통근 페리가 구조를 위해 다가오는 모습도 보인다.(오른쪽 아래 사진 빨간 원.)/사진=유튜브 채널 'AIRBOYD' 영상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속 기장은 기지를 발휘해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기로 결심한다.

블랙박스에 담긴 당시 교신 내용에 따르면 그는 부기장에게 "다른 의견 있나?"(Got any ideas?)라며 의견을 묻는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승객들에게는 기내 방송으로 "충돌에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이를 들은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는가 하면 무릎 사이로 머리를 숙인 채 기도를 하는 등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3시31분. 비행기는 시속 230㎞으로 허드슨강 물 위에 불시착했다.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무사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 기장의 냉철한 상황 판단 능력과 비행 능력, 승객과 승무원들의 침착한 대응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착륙 직후, 설렌버거 기장은 조종실 문을 열고 나와 대피 명령을 내렸고,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대피를 도왔다.

비상 착륙한 비행기엔 큰 손상이 없었지만 강물 속으로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빠져나와 점점 가라앉는 비행기 날개 위에 서서 구조를 기다렸다.

맨해튼과 뉴저지를 오가는 허드슨 강 통근 페리 '토마스 제퍼슨 호'의 빈센트 롬바르디 선장은 강 위에 떠있는 비행기가 비상 착륙하는 것을 보고 즉각 해안경비대에 알린 뒤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고, 이내 다른 페리와 해안경비대 등이 출동해 구조에 동참했다.

영하 6도의 추운 날씨였던 만큼 승객들에게 저체온증이 나타나기 전 구조 작업을 끝내느라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승무원 1명이 다리 중상을 입고, 승객 78명은 경미한 부상과 저체온증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조종사가 신속히 판단해 비행기를 물 위에 안정되게 수평 착륙시켜 충격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기지로 155명 구한 설렌버거 기장…"42년 쌓은 경험과 지식 덕분"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US 에어웨이 1549 편의 체슬리 설렌버그 기장이 사고 한 달 만인 2009년 2월 9일 CBS 방송에 출연한 모습./AFPBBNews=뉴스1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US 에어웨이 1549 편의 체슬리 설렌버그 기장이 사고 한 달 만인 2009년 2월 9일 CBS 방송에 출연한 모습./AFPBBNews=뉴스1
기적을 이뤄낸 설렌버거 기장은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불리게 됐다.

마이클 블룸버그 당시 뉴욕 시장은 "조종사가 비행기를 안전하게 허드슨 강에 착륙시킨뒤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환상적인 일을 해냈다"면서 "그는 승객이 모두 탈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행기 안을 두 번이나 살폈다"며 박수를 보냈다.

한 승객은 "비행기 입구에서 승객들이 탈출할때마다 번호를 부르도록 하는 남성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가 사고기 조종사였다"고 전했다.

설렌버거 기장은 구조된 직후에도 넥타이가 흐트러져 있지 않을 정도로 냉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한 뉴욕 경찰은 구출 직후 허드슨 강 주변의 여객 터미널에서 대기하던 설렌버거 기장에 대해 "모자를 쓰고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고 전했고, 한 승객은 "그는 침착함의 화신"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설렌버거 기장은 AARP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완벽한 비상 착륙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저축'에 비유해 설명했다.

그는 "42년간 나는 경험, 교육, 훈련이라는 은행에 적지만 정기적인 예금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1월15일, 그간 내가 저축해온 것은 충분했고, 큰 돈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42년간 비행하며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과 지식들로 기적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는 겸손의 답변이었다.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포스터.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포스터.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이 사고는 2016년 9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제작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영화화됐고,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가 설렌버거 기장 역을 맡았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