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게임수출 직접 챙기는데…檢 "칼부림은 게임 영향"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23.08.1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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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마켓]
신림역 흉기난동 근본 원인 분석 없이 '게임 중독 영향' 규정
게임에 대한 몰이해가 조장한 성급한 발표에 게임포비아만 확산
팬데믹 시기 흑자기조 유지하며 K-게임 전 세계에 알린 게임업계 사기 떨어져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尹 게임수출 직접 챙기는데…檢 "칼부림은 게임 영향"


새만금 잼버리가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대한민국 국격이 떨어졌다고 개탄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한류로 일컬어지는 K-콘텐츠 산업 등이 한껏 끌어올린 우리나라 이미지를 잼버리 사태로 한번에 끌어내렸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11일 검찰이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33)의 범행 배경으로 '게임 중독'을 밝힌 것은 K-콘텐츠산업 자체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궜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일 당시 국내 원전 수출이 난항을 겪었던 것처럼, 한국이 '게임 후진국'으로 비쳐질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분투하는 국내 게임업체들이 위축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며 게임 등 K-콘텐츠의 수출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검찰의 무리한 사건 해석이 이 같은 정부 전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당한 검찰 논리 "게임하듯 사람 찌르고 움직였다"
GTA를 플레이한다고 누구나 차 도둑이 되진 않는다. /사진=락스타게임즈GTA를 플레이한다고 누구나 차 도둑이 되진 않는다. /사진=락스타게임즈
검찰이 신림역 흉기난동의 배경으로 피의자 조선의 '게임 중독'을 지목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조선이 지난해 12월 실직 이후 약 8달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을 하며 보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근거로는 조씨가 즐기던 게임 장르가 FPS(1인칭 슈팅게임)인데, 범행 당일 아침에도 휴대전화로 게임영상을 시청했으며 조씨가 2분여 동안 110m 구간을 누비며 흉기로 4명을 공격하고, 범행 시도 후 다른 대상자를 물색하던 모습이 마치 FPS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수사팀이 CC(폐쇄회로)TV를 자체분석한 결과 조씨의 범행수법이 슈팅게임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11일 브리핑에서는 "조씨 사건 이후 신림역 살인예고글을 게시한 또다른 피의자도 조씨의 범행장면을 보고 '같이 게임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것으로 볼 때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조씨의 행위를 해당 게임과 유사하게 본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FPS게임하면 살인자? 매일 사격하는 군인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소재 해군 특수전전단을 찾아 특수전 장비로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소재 해군 특수전전단을 찾아 특수전 장비로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검찰의 발표가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찾는 데 실패한 뒤 만만한 '게임'에 책임을 돌리려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가뜩이나 치안 불안감 등을 두고 여론이 악화하자 수십년 동안 일탈 행위의 원인으로 무분별하게 지목된 '게임'을 또 들먹인다는 것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검찰이 게임에 사건 원인을 돌린다는 건 이번 묻지마 칼부림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사건 예방을 위한 조치를 찾지 않겠다는 얘기"라며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군대에서 매일같이 실제 총기 훈련을 받는 군인들은 모두 예비범죄자가 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 업계 관계자 역시 "잔혹한 스릴러 영화를 본다고 누구나 다 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살인 계획부터 범죄까지 다 보여주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던 사람이 범행을 저지르면 그게 다 넷플릭스 같은 OTT 탓이라고 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의 무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지난해 11월1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인 '지스타(G-STAR)2022' 을 찾은 관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해 11월1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인 '지스타(G-STAR)2022' 을 찾은 관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뉴스1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흉악범들의 범행 배경으로 '게임'을 지목하는 현상에 대해 "다른 취미에 비해 허들이 낮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초기 비용이 들어가는 다른 취미에 비해 게임은 PC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접속해서 돈을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자신의 열악한 여건 등을 비관하며 행동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제적으로 안 좋은 상황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사람들이 게임을 취미로 즐기는 경우가 많을 수는 있죠."

다만 이는 '상관관계'일 뿐, 게임 자체가 범행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로 볼 수는 없다. 한순간의 범죄로 인해 잃을 게 많은 부유층의 경우 강력범죄 범행률이 낮고, 이들 중 상당수가 골프를 취미로 즐길 수는 있다. 이때 "골프를 즐기는 이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상관관계는 성립할 수 있다. 다만 "골프가 인성을 함양해 강력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한다"는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골프를 즐기면서 인성이 망가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다.

검찰의 발표는 '게임'과 '묻지마 칼부림'의 상관관계를 넘어 억측으로 '인과관계'로 끌어올린 결과로 보인다. 검찰 역시 이를 의식한 듯 브리핑에서 "게임중독이 범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게임중독이 바로 동기라고 하는건 아니고, 범행 직전에 조선의 상태가 게임중독이었다는 것"이라며 모호하게 설명했다. 정작 검찰에 조선의 심리분석을 자문한 전문가들은 "조선의 좌절과 불만이 어떠한 외부 자극에 의해 표출됐다"는 견해를 밝혔다.

"게임, 그럴 줄 알았어" 이때다 싶어 성난 이들
현역 의원 시절 ‘4대 중독법’의 대상으로 게임을 넣고, 게임중독을 정신질환으로 분류해 비판 받았던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캠프 총괄특보단으로 합류한 바 있다. /사진=뉴시스현역 의원 시절 ‘4대 중독법’의 대상으로 게임을 넣고, 게임중독을 정신질환으로 분류해 비판 받았던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캠프 총괄특보단으로 합류한 바 있다. /사진=뉴시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수십년 동안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게임을 '저질 취미'라거나 '좀스러운 일' '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비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 게임이 폭력을 유발하고 학생들의 성적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검찰의 발표를 기점으로 "게임하더니 살인자가 됐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게임의 폭력 유발' 논쟁이 이미 근거가 없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선 50년이 지난 지금도 등장하고 있다"며 "여전히 일부 사람들의 인식은 과거 한 방송국에서 PC방 전원을 내린 뒤 성 내는 사람들을 보도하며 '게임의 폭력성 때문에 화를 내고 있다'고 하던 수준에 머물러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학생의 성적 저하의 원인을 찾던 학부모들은 이럴 때 '게임 탓'으로 돌리는 걸 선호할 수 있다"며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검찰 때문에 게임포비아를 조장할 수 있는 이런 발표가 나온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어깨 쳐진 게임업계 "언제는 수출 효자라면서…"
/사진=2022 게임백서/사진=2022 게임백서
이번 검찰의 발표를 두고 가장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한국의 콘텐츠 수출을 주도하던 게임업계 임직원들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게임업계 종사자는 8만1856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2021년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86억7287만달러(약 11조4829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게임 수입은 3억1223만달러(약 4134억원)에 불과하다. 게임이 대표적인 '수출 효자'인 셈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다른 무역 분야가 적자 기조로 흘러가는 와중에도 게임은 대폭 흑자 기조를 유지하며 한국 경제를 지탱했다.

이들은 검찰의 '게임중독' 브리핑에서 여전히 보이는 한국 사회의 게임에 대한 몰이해, 뒤이을 것으로 예상되는 게임규제 논의 등이 수출에 악영향을 주고 산업 전반을 위축시킬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던 시기 해외 원전 수주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와 같다. 자국에서는 게임을 '살인 동기' 취급하면서, 이를 잘 포장해 외국에 판매한다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임업체 관계자는 "이런 발표가 나올 때마다 양질의 게임을 만들어 공급하고 사회에 기여하려는 임직원들의 사명감도 꺾일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은 게임 같은 콘텐츠를 집중 육성해 수출을 활성화하겠다는 마당에 수사당국이 쌍팔년도 논리로 업계 사기를 한껏 위축시킨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 대학 교수는 "게임관련 학과들의 수시모집이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발표가 나오고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지면 수시모집률이 대폭 낮아진다"며 "검찰의 안일한 발표는 현직 게임업체 직원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원들까지 등돌리게 만들어 게임산업을 위축시키는 개탄스러운 행위"라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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