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의 스타일과 BM(비즈니스모델)을 따라한 소위 '리니지라이크' 게임이 대세를 이루면서 한국 게임 시장을 망쳤다는 비판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리니지 개발사인 엔씨소프트 (216,500원 ▲1,000 +0.46%) 역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과연 한국 게임업계가 천편일률적인 MMORPG 위주로 구성된 게 엔씨소프트와 리니지만의 잘못인지는 의문이다.
리니지W에서 무기 강화 도중 장비가 파괴되는 모습.. /사진=리니지W 캡처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스펙을 올려야 한다. 여기서 적용되는 게 '확률형 아이템'이다. 기본적인 장비나 스킬은 필드에서 사냥을 하며 얻을 수 있지만, 무기부터 장비까지 스펙업을 위해서는 '강화'(인챈트)를 해야 한다. 어느 수준 이상의 인챈트는 확률에 따라 장비 자체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낮은 확률을 뚫고 고스펙을 완성하기 위해 시행횟수를 늘리고, 여기서 막대한 과금이 발생한다.
'확률'과 '의외성'이라는 게임 요소
확률형 아이템은 다양한 게임에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넷마블 마구마구의 레전드 카드. /사진=넷마블
그런데 게임에서 '확률'이라는 건 원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고스톱과 포커 같은 유구한 전통의 보드게임들도 기본적으로 '확률 싸움'이다. 온라인게임으로 영역을 확장하더라도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지 않는 게임이 드물 정도다. MMORPG 필드 사냥 중 아이템을 획득하는 행위부터 수집형 게임의 카드 뽑기 등이 다 확률을 게임 요소로 도입한 BM이다. '깜깜이 확률'이 문제가 됐던 일부 게임들의 경우 관계당국의 시정명령에 따라 최근에는 모두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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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창출'.. 기업의 본연 목적 추구한 엔씨소프트
김택진 NC 구단주가 2020년 11월 2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0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6차전 두산베어스와 NC다이노스의 경기가 끝난 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뉴스1
심지어 과금을 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필드 사냥에서 쌓이는 경험치 자체가 달라서 점점 고과금 유저와 저과금 유저 사이의 격차가 커진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은 유저들은 새 BM이 나올 때마다 과금을 해 남들과 발을 맞추거나, 아예 게임을 접는다. 이를 두고 한 유저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게임"이라고 평했다.
이렇듯 리니지는 철저하게 '고래'라고 불리는 고과금 유저들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돈을 쓰고 스펙을 쌓은 유저들은 서버 내에서 '라인'이라 불리는 그룹을 형성해 왕 대접을 받는다. 경쟁 자체가 스트레스 요소이면서도, 이를 극복했을 경우의 달콤한 과실을 내놔 유저들에게 재미를 준다는 게 엔씨소프트의 전략이다. 기업으로서는 매출을 극대화해 수익을 추구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선 리니지식 MMORPG가 성공한다"는 신화가 퍼졌다.
린저씨 노린 파이 갈라먹기 "우리 애는 리니지랑 달라요"
리니지W. /사진=엔씨소프트
리니지에 실망해 새로운 게임에 희망을 품고 찾아갔던 유저들은 새로운 게임에 안착해 즐기는 경우도 있지만, 새 게임에서도 재미를 못 찾고 또 떠나는 경우도 많다. 여러 MMORPG의 매출이 출시 초기에 반짝 성공을 보이다가 급격하게 하향안정화 되는 것은 이 같은 경향을 반영한다.
이름만 리니지와 다를뿐, 리니지라이크로 불리는 게임들은 결국 리니지가 구체화한 '린저씨' 고객층이라는 파이를 나눠먹는다는 측면에서 리니지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게임들이 우후죽순 나오면서 신규 장르의 게임 개발 빈도가 줄어들고, 유저들의 피로감이 높아졌다. 이 같은 게임 고객들의 불만이 MMORPG의 상징과 같은 리니지에 모두 쏠리는 것이다.
'린저씨'의 노화와 시장의 변화
지난 2월 6일 오전 서울 시내 PC방을 찾은 시민들이 컴퓨터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10~20대는 고과금과 '패거리 문화'로 서버에서 우월적 지위를 뽐내는 MMORPG보다는, 경쟁 요소가 덜 하더라도 인게임 요소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수집형 RPG 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과거 '오타쿠 문화'로만 여겨지던 서브컬처 게임들이 최근 매출과 인기 지표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이에 따라 게임사들은 장르 다변화에도 관심을 두는 추세다.
게임사들의 체질개선, 언제쯤 이뤄질까
데이브 더 다이버. /사진=넥슨
최근 넥슨이 서브브랜드로 론칭한 민트로켓의 첫 작품 '데이브 더 다이버'는 체질개선과 장르 다변화의 성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만4000원짜리 타이틀이 지난해 10월 얼리액세스부터 올해 7월까지 누적판매량 100만장을 돌파했다. 경쟁과 대결, 확률형 아이템 없이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성공의 비결은 간단하다. 게임 콘텐츠가 주는 본연의 재미를 추구한 덕분이다. 넥슨의 기존 한국식 개발 문법에 익숙하던 유저들이 '넥슨의 실수'라는 말까지 할 정도다. MMORPG 외의 게임에서도 다양한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게 린저씨가 아닌 고객들까지 게임으로 끌어들여, 국내 게임업체들이 다시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