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2019년 6월, 톈안먼 광장이 홍콩인들에게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2019.06.1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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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베이징에서 2년 가까이 살면서 요즘처럼 이 말의 의미를 실감했던 적이 없다. 중국의 '톈안먼 사건 30주년'과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라는 상반된 두 풍경을 목도하면서다. 한쪽은 너무 차갑고, 한쪽은 불같이 뜨겁다.

지난 9일 홍콩 거리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몰려나왔다. 전체 홍콩 시민 720만 명 중 7명 당 1명 정도가 거리 시위에 참여했다. 홍콩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뒤 최대 규모 시위로 평가됐다. 수많은 홍콩 시민들을 불러모은 것은 홍콩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 이슈다. 개정안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홍콩인들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이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을 본토로 송환하도록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실상 중국 법 체계가 적용되면서 자유가 억압받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12일 예정됐던 홍콩 입법회의 2차 법안 심사는 수 만 명의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을 둘러 싸면서 연기됐다. 시위대가 도로 점거 농성을 시작하고 경찰들이 물대포, 최루탄 등으로 대응하면서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2014년 홍콩 행정수반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이어졌던 '우산혁명'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시위에 참여한 열여덟 살 써니 찬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시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당당히 말했다.

자유를 향한 홍콩인들의 절절한 목소리는 톈안먼 광장의 침묵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1989년 6월4일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톈안먼 광장에 군대를 투입해 두 달 넘게 부패 척결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여온 시민·학생들을 학살했다. 중국 정부는 24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지만, 외신 등은 1000명 이상 숨졌다고 전한다.



톈안먼 사건 3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찾은 톈안먼 광장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톈안먼 사건를 떠올리게 하는 행사도, 조형물도, 문구도 없었다. 검문검색이 강화되면서 외신 기자들은 아예 광장 진입이 불허됐다. 관광객들만 눈에 뛸 뿐이다. 다음날이 무슨 날인지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경계의 수위를 높인 공안들 외에는 없어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중국 정부가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관련 콘텐츠들을 모두 차단하는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톈안먼 사건의 의미를 떠올릴 고리를 찾기는 힘들다. 그마나 의지가 있는 사람이 있어도 도심 곳곳에 배치된 있는 공안들의 검문 검색과 감시 카메라들을 피하기 어렵다. 중국 정부의 통제는 AI(인공지능), 빅데이터, 안면인식 기술 등 첨단 기술이 가미되면서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다.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던 해외사이트 접속도 VPN(인터넷 우회접속 프로그램) 단속이 강화되면서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일주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하나의 국가'에서 펼쳐진 두 풍경은 별개의 사건이지만 또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홍콩인들은 톈안먼 광장의 침묵을 보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떠올렸을 것이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넘겨받으면서 최소한 50년 동안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2047년 이면 '일국양제'를 허물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의 중국화'를 원하는 중국 정부와 자유를 향한 홍콩인들의 투쟁이 갈수록 첨예해질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2019년 6월, 홍콩이 써가고 있는 새로운 역사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광화문]2019년 6월, 톈안먼 광장이 홍콩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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