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국가정보원 국제범죄담당 K요원은 입수한 첩보를 두고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고 집값이 비싸다는 강남 한복판에 일본 폭력조직 야쿠자가 아지트를 마련해 놓고 대만 폭력조직과 필로폰을 대량 거래할 예정이라는 첩보다.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약을 10~20㎏(킬로그램)씩 대량으로 유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며 "그간 한국은 마약 경유지로 인식됐기 때문에 첩보를 선뜻 믿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해 10월 검거한 이들로부터 압수한 필로폰은 무려 28만여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8.6㎏에 달했다. 이미 2015년 무너진 마약청정국 지위에서 나아가 마약공화국의 가능성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K요원은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동남아 등지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마약밀매 조직의 국내 진출을 꼽는다. 그는 "이들은 태국-미얀마-라오스 3개 국가가 만나는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 마약을 세계 각국에 유통한다"고 말했다.
강한 처벌·단속 등으로 유통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시장 특성이 역설적으로 해외 마약 조직에는 한국이 매력적인 시장으로 느껴지게 했다는 것이다. 국내 조직은 밀반입의 위험을 부담하기보다는 유통망을 마련하는 식으로 분업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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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한 '던지기' 수법 등 비대면 거래가 늘며 한국의 자체적인 마약 소비가 증가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더는 한국이 일본과 호주 등지로 향하는 경유지에 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최일선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K요원은 한국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K요원은 "최근 사회 저명인사들 마약사건에서 보듯이 국내에 마약이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이를 막지 못하면 외국처럼 누구나 마약을 쉽게 접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국민도 경각심을 가지고 정보·수사기관과 함께 마약을 뿌리 뽑는데 동참해 주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