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사진=뉴스1
1940년대 중반 어느 모임 자리,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남학생들 앞에서 기가 눌린 여학생들에게 이희호 여사는 이렇게 외쳤다. 가게 사장에게는 "여학생들이 마실 수 있는 음료수도 따로 준비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아직 '남존여비'의 유교적 가치관이 팽배하던 때였다. 당시 이 여사의 별명은 독일어 중성 관사인 '다스(Das)'. 행동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붙은 별명이었다.
10일 97세 일기로 별세한 이 여사는 여성운동의 길을 앞장서 개척했다.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에서 이화고등여학교(현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를 다닌 '엘리트'였지만, 힘든 처지의 여성을 위해 평생을 봉사했다.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한국전쟁에 휘말린 여성들을 위해 '대한여자청년단'을 조직했고 이듬해 '여성문제연구원'을 창립하며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엔 독재정권의 모진 탄압을 견디는 '정치적 동지'이자 '여성인권 조언자'로 활약했다. 김 전 대통령 임기 때 처음으로 여성부가 설치된 데도 그의 영향이 컸다. 여성들의 공직 진출도 이때 크게 확대됐다. 뚜렷한 여권 신장을 두고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이야기도 돌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