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내가 만일 '정의선'이라면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2019.01.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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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가끔 상상해보곤 한다. 내가 만일 정의선 현대차 (249,500원 ▼500 -0.20%)그룹 수석부회장이라면. 자동차 산업을 취재하면서부터의 고약한 취미다. 솔직히 부와 명예는 부러워도, 사양하고 싶다.

일단 엄중하면서 골치 아픈 현안이 많아도 너무 많다. 4차산업혁명 시대라며 친환경·자율주행·커넥티드카 등 차에 대한 눈높이는 높아져만 간다.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까지 눈독을 들인다. 경계 없는 무한 경쟁이다. 기본적으로 기존 내연기관 차의 성능·디자인을 계속 향상시켜야 그나마 캐시카우도 유지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최대시장인 미국·중국은 '무역전쟁'을 벌이며 불똥을 팍팍 튀기고 있다. 강성 노조의 파업은 연례행사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수익성까지 저조해질 수 밖에.



게다가 지난해 '신의 한 수'로 평가받으며 자신있게 내놓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도 해외 투기자본 공격으로 무산돼 '플랜 B'를 짜야 한다. 차 수요는 줄어드는데 정치권의 '광주형 일자리 공장' 투자 압박은 거세다.

다른 재계 총수, 기업인도 고민은 매한가지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 경영은 그 회사 직원들만 먹여 살리는 게 아니다. 전·후방 산업 파급성이 높다 보니 국내에서만 약 180만개 일자리에 영향을 미친다. 한 번의 큰 결정이 한국 경제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어깨가 무거운 자리다. 올해는 '정의선 친정 체제' 원년이다. 어떤 위기·난관도 뚝심 있게 뚫고 나가야 할 시기다. 그간 오히려 해외보다 내수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에 대해 평가절하한 부분이 없지 않다. 물론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 해외보다 역차별받는다는 비판 여론을 불러 일으켰던 과오에 대해선 철저히 점검하고, 품질 개선을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근본적인 노사 관계 구조 개선도 큰 숙제다.

삼성동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사업을 두고 "부동산기업 아니냐"는 조롱 섞인 비판도 있지만, 가까이서 관찰했을 때 정의선 시대 현대차그룹의 변화와 혁신 노력은 상당하다.

하이브리드부터 순수전기차·수소전기차까지 고르게 친환경차 기술을 보유한 곳은 세계 주요 브랜드에서도 드물다. 거의 모든 세그먼트 라인업도 촘촘히 갖췄다. 고성능차 N의 성능이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디자인을 보면 연구·개발 의지와 성과에 놀랄 때도 있다.


특히 고무적이고 주목할 만한 건 세계 최초 수소전기차 양산을 넘어 수소사회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단 강한 의욕을 보이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수소전기차 홍보모델'을 자처하며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는 것도 좋은 기회다. 멋 훗날 '정의선 = 수소경제 개척자, 미래 모빌리티 선도자'로 역사에 기록되길 기대해본다. 고통스럽더라도 알을 깨야, 비로소 멀리 비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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