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마블’에 대한 공격

윤지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9.01.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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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에 대한 공격


대략 1년 전쯤이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서 개봉했지만, 일부 팬들에게엄청난 반발을 샀었다. 반발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섞여 있었지만, 그 중에는 주인공을 비롯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배역들이 전부 여성이나 유색 인종 배우들이고, 악역으로 나온 사람둘이 백인 남성이었다는 하찮은 이유가 있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만 그런 것도 아니다. 2016년에 개봉한 ‘고스트 버스터즈’ 또한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지만 팬들에게는 외면받았다. 역시나 다른 이유들이 있기는 했지만, 원작의 주인공들이 전부 여성 배우들로 바뀐 것이 컸다. ‘고스트 버스터즈’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이후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미투 운동과 시기를 발맞춰 할리우드에서는 여성이 주연이고, 여성들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영화들을 다수 만들어내고 있다. 2017년에 ‘원더우먼’이 있었고, 2018년에는 ‘오션스 8’도 있었다. 지난 시간은 단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던 팬들이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돌이켜볼만큼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2019년 3월 개봉 예정인 ‘캡틴 마블’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내에서 가장 강력한 캐릭터를 캡틴 마블이라는 여성 히어로가 맡는 것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는 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예라면 지난 9월 영화의 포스터가 공개된 이후, 캡틴 마블 역의 브리 라르손이 웃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며 딴지를 걸었던 것이 있다. 예고편에서도 브리 라르손이 표정 변화 없이 경직된 연기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2016년 ‘애틀랜틱’이 지적했듯이, 여성들은 너무 자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미소를 지으라고 강요받는다. 슈퍼 히어로인 캡틴 마블에게마저 좀 더 웃으라고 얘기하는 건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당연하게도 이 딴지에 화가 난 이들은 남성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이 강제로 웃고 있는 포스터를 만들었다. 통쾌한 순간이었지만, 2018년에도 저런 걸 여전히 비판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2019년 개봉하는 영화 중에 최고 기대작 중 하나지만, 이 영화가 항상 ‘원더우먼’과 비교된다는 점도 못마땅한 부분 중 하나다. ‘원더우먼’이 라이벌인 DC 유니버스의 대표적인 여성 히어로 영화이고, '캡틴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단독 여성 히어로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둘을 비교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12월 3일 ‘허핑턴 포스트’는 ‘캡틴 마블’의 새 예고편이 나왔다는 기사를 링크하면서 “저리 비켜, 원더우먼”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하지만 둘 이상의 여성들이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언제나 이 여성들이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비교되곤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남성 히어로 영화에 대해서는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두 영화를 비교하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쿼라’의 “소셜 저스티스 워리어가 묻었다”는 식의 비판은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영화에 페미니즘(혹은 PC) 묻었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비판은 영화에 불필요한 압박을 준다. 페미니즘을 표방한 영화니까 개봉도 전에 별로일 거라고 얘기하는 것은, 페미니즘을 표방한 영화니까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만큼이나 공정하지 않다. 다행히 할리우드와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여성 주연의 히어로 영화들을 만들어낼 계획이다. ‘캡틴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4와 5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소니는 스파이더우먼을 계획 중이다. 워너 브라더스에서는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DC의 히어로 팀, ‘버즈 오브 프레이’의 촬영에 곧 들어간다.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할리우드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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