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급등 원흉이라고?'…박원순 시장의 진의는?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18.09.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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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도시 계획의 혁신적 변화+저층주거지 환경 개선 등 갈길 먼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사진=뉴스1 박원순 서울시장/사진=뉴스1


"시장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난 7월 싱가포르 발언을 시장이 이해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리콴유세계도시상 수상차 싱가포르를 찾은 박 시장이 기자들과 나눈 발언은 천편일률적인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싱가포르처럼 다양화하겠다"는 의미였다. 부동산 시장 급등 빌미가 됐던 여의도나 용산 개발 계획은 따지고 보면 이미 기존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몇 번이나 보도되고 나온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알려진 내용이었다.



여의도는 지금처럼 아파트 단지 별로 재건축을 추진하다 보면 난개발이 될 수 있으니 종합적인 계획 하에서 재건축이 이뤄져야 한다는 발언이다. 마찬가지로 용산과 서울역 구간 철도를 지하화하고 상부를 MICE 단지 등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도 이전부터 여러 번 밝힌 내용이다. 시장에서도 충분히 숙지하던 내용으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호재는 아니었다.

박 시장이 당시 싱가포르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서울시 도시계획의 혁신'이었다. 도시 계획을 혁신해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인 건물 디자인이 아니라 독특하고 개성 있는 건물을 설계해 지을 경우 용적률과 높이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방안이 따지고 보면 핵심 골자였다.



박 시장은 "서울은 어디 가나 건물들이 똑같은 반면 싱가포르는 동일하게 생긴 건물을 찾아볼 수 없다"며 "이런 점을 반영해 도시계획위원회를 혁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건물을 지을 때도 전망과 경관, 교통영향 및 환경영향평가는 물론 바람길, 동물 이동로 등을 모두 고려해 종합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건물 지붕 모양도 모두 다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건물을 지을때 주거와 상업지역, 커뮤니티 시설이 모두 들어가도록 철학과 내용이 있는 도시계획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는 건물을 특이하게 디자인하고 만들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준다"며 "앞으로 진행할 도시계획 혁명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예쁘고 차별화된 건물을 지으면 높이든 일반 용적률이든 인센티브를 더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계획 혁명은 이후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시장은 보고 싶었던 기존에도 계속 언급됐던 여의도, 용산에만 반응했다. 실제로 그동안 나온 얘기들을 한데 모으니 그럴싸했다.

'통째로'란 단어에만 천착해 그야말로 기폭제가 필요했던 시장을 끌어올릴 구실로 활용했던 것. 박원순 시장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진 직후 여의도와 용산 일대 아파트 시세는 한주만에 호가가 1~2억원 오르는 등 요동쳤다. 상승세는 서울 전역으로 확산돼 안 오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모든 지역이 올랐다.

박 시장을 주택 가격을 급등시킨 원흉이라고 얘기하지만 진짜 원흉은 부동산을 끌어올릴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투기 심리다. 박 시장은 계속해서 진의를 알리려 했지만, 시장은 아랑곳 하지 않았고, 결국 박 시장은 한발 물러나 여의도, 용산 개발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대립하는 듯한 모습도 비쳐졌다. 사실 그동안 '시장이 안정됐다'고만 언급하며 급등 에너지가 쌓이는 추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정부도 이 과정에서 책임론에서 한발 비켜 한시름 놓았다.

서울시는 이후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한 신규 주택 택지 공급 방안을 두고도 중앙 정부와 이견에 휩싸였다. 서울시가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그린벨트 해제를 결사 반대하고 나선 것. 그린벨트 해제는 과거에서도 보듯 지역 주택 가격 폭등을 이끌어 논란이 많은 정책이다. 자기 행보를 가려는 박 시장의 결단으로도 읽혔다. 하지만 그린벨트 해제 반대는 박 시장의 지금까지 환경과 미래를 위해 그린벨트 개발을 반대한다는 일관적인 행동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정부 권한으로 직권 해제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이에 대해 앞으로도 박 시장이나 서울시의 동의나 공감을 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시는 대신 유휴지를 개발하고 도심의 용적률을 높여 고층 건물을 짓게 하고 주거를 보급하는 소위 '컴팩트 시티'론을 제시했다. 이는 머니투데이에서도 MT리포트로 심층적으로 다룬 내용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식 도심 고밀도 개발을 통해 주거를 도심에 집중 보급하는 컴팩트 시티는 서울의 도시 계획에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서울 도심을 핵심 주거지로 개발하는 것을 통해 외곽에 나간 시민들을 다시 도심으로 불러 도심을 부흥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제시됐다.

여의도·용산 개발 논란은 박 시장이 삼양동 한달살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발표한 강북 균형발전 계획에도 불똥이 뛰었다. 강북 균형 발전 계획도 마찬가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 나온 계획이다.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저층주거단지도 아파트 못지 않은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주거의 한 축을 담당토록 하려는 매우 중요한 계획이다

아파트만을 주택으로 인식하는 현 시점에서 저층 주거지의 환경 개선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주택이 아파트로만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울 전역이 모두 아파트 단지일 필요는 없다.

현재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열악한 환경에서 저층주거단지의 주택 수는 사람들의 안중에 없다. 오직 신규 아파트만 양질의 주택 공급지로 들어갈 뿐이다. 그래서 주택 계획에 있어 최소한 저층 주거지도 아파트 단지처럼 사람이 살만큼 좋은 환경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저층 주거지에도 쉽게 걸어갈 만한 거리에 공원, 도서관, 놀이터, 커뮤니티시설 등이 갖춰져 저층주거지 거주민의 삶의 질을 끌어 올려야 한다. 저층 주거지를 개발하는 것이 골자인 강북 균형 발전 계획은 이러한 내용을 혁신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진의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 발언을 이해하는 방식이 그랬다. 박 시장이 앞으로 저층주거지도 사람들이 살만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하려면 실질적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에 지금부터 주력해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임기를 마무리하는 3선 시점에 중요한 종합 계획이 나왔다는 점이다. 임기 내 시간이 부족하다면 속도를 내서 '저층 주거지도 살만하다'라는 인식 개선에 나설 성공 모델을 제시해야 하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누가 시장이 되던지 저층주거지 개선에 투자를 집중하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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