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덜 하고 감각은 더 키우는 ‘뇌의 인문학’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7.2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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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생각의 속임수’…인공지능이 따라하지 못할 인문학적 뇌

생각은 덜 하고 감각은 더 키우는 ‘뇌의 인문학’


사랑을 단념하겠다고 말해도 몸은 반대로 더 활활 타오른다. 사랑이 힘든 것은 내가 하는 말과 내 몸이 원하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

의식과 감각은 서로 물러나지 않는 쌍두마차다. 감각은 먼저 자리 잡은 뇌의 핵이고 의식은 이 핵을 둘러싸고 진화해왔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증오할 때 먼저 반응하는 것은 느낌, 즉 감각인데 이를 의식의 필터가 ‘생각’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몸이 활활 타오르는 감각을 제어하는 의식 때문에 우리는 ‘진실’을 감추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시댁과 함께 등산하며 머리에선 “괜찮다”고 읊어도 장에 탈이 나는 현상, “인연 끊고 살겠다”고 다짐해도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는 감정 모두 의식과 감각의 충돌이 빚어낸 결과다.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늘 견고한 의식이다. 의식은 감각보다 늦게 진화했는데도 원래부터 있던 몸의 감각들을 베일로 감추고 혼자 일을 다 처리하는 척한다. 내 몸의 감각과 다른 생각이 ‘속임수’로 태어나는 배경이다.



저자는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다고 강조한다. 의식은 편안하다고 나를 속이려 하지만 몸은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뇌과학으로 보면 진화를 뜻하는 뇌의 상부는 의식이 기억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곳이다. 하부는 감각과 슬픔, 기쁨, 공포 등 감정이 자리 잡은 곳이다.

하부의 감정은 반드시 상부를 거쳐야 느낌으로 의식된다. 상부는 손상을 입으면 판단이나 인지에 부분적 장애가 일어나지만, 하부가 손상되면 몸 전체가 부서진다. 그만큼 감각이 더 중요하다.

저자는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속임수여서 친밀함의 감각을 키우며 느낌의 영역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곳은 순수 사유가 아니라는 것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라캉이 데카르트를 뒤엎었던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는 말은 지금 시대 가장 유효한 명제로 수용될 듯하다.


책은 뇌의 의식과 감각이라는 ‘일원적 이중장치’가 만들어낸 생각의 속임수로 나타나는 고독, 착각, 후회, 집착, 공감 등을 다루면서 알면서 하지 않거나 모르면서 하는 뇌의 특성을 세세하게 조망한다.

저자는 “이런 감정에 기초한 허구성이야말로 인공지능이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뇌의 고유한 인문학적 기능”이라고 강조한다.

◇생각의 속임수=권택영 지음. 글항아리 펴냄. 384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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