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2.7조 묻지마 투자' 벤처펀드의 네가지 함정

머니투데이 김명룡 기자, 전병윤 기자, 김도윤 기자, 박계현 기자 2018.06.0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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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흔드는 벤처펀드](종합)

편집자주 편주:공모주 우선배정 특혜를 노린 수조원대 자금이 코스닥벤처펀드에 몰려들었지만 운용사들은 운용에 갈피를 못잡고 있다. 공모주식이나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에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혜택을 준다는 강제규정이 말썽이다. 투자할 곳은 마땅치 않은데 의무적으로 투자해야하니 부작용이 일어난다. 게다가 코스닥 벤처펀드를 활성화하기 위해 쥐어준 당근이 다른 운용사나 투자자에겐 역차별로 작용한다. 인위적인 시장개입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면 이제라도 해법을 찾아야한다.

특혜가 화 불렀나…코스닥벤처펀드에 멍드는 자본시장
[코스닥 흔드는 벤처펀드]①코스닥벤처펀드에 2.7조 유입…공모·메자닌서 부작용 속출

[MT리포트] '2.7조 묻지마 투자' 벤처펀드의 네가지 함정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코스닥벤처펀드가 오히려 자본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을 노리는 벤처기업 공모주 경쟁률과 공모가가 치솟고 메자닌(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 금리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 4월 출범한 코스닥벤처펀드는 코스닥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코스닥에 돈이 돌면 스타트업·벤처가 살아나고 이를 통해 2030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동력 육성이라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를 위해 펀드에 코스닥 공모주 물량의 30% 우선배정, 소득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코스닥 시장의 변동성이 워낙 커서 당근을 주지 않으면 기관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특혜’가 시장 왜곡을 초래했다. 고수익을 기대하고 불과 한 달여 만에 약 2조7000억원이 펀드로 유입됐다. 펀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장 기업 공모주 △CB(전환사채) 등 메자닌에 투자해야 하는데 3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소화할 만한 물량을 찾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말도 안되는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MT리포트] '2.7조 묻지마 투자' 벤처펀드의 네가지 함정
◇자금 빨아들이는 괴물펀드…뒤틀린 공모시장·메자닌 =
코스닥벤처펀드의 시장왜곡은 공모주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코스닥벤처펀드가 공모주 시장의 수급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지난달 펀드 출시 이후 코스닥에 상장했거나 상장을 진행 중인 4개사(제노레이, 세종메디칼, 현대사료, 파워넷)의 수요예측 평균 경쟁률은 793대 1에 달한다. 지난해 평균 경쟁률 351대1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공모물량을 배정받기 위한 수요가 몰리면서 청약 가격을 제시하지 않는 '묻지마 주문'이 급증했다. 수요예측에서 가격이 얼마든 청약하겠다는 '가격 미제시' 물량이 최고 21.9%를 기록했다. 펀드가 출범하기 전인 3월까지 코스닥에 상장한 14개 기업 중 가격 미제시 비중이 10%를 넘는 사례가 2곳에 불과했다

코스닥벤처펀드 영향으로 메자닌 투자 수요가 폭증하며 무이자에 리픽싱(전환가액재조정) 80% 등 발행회사에 유리한 조건의 자금조달도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적자기업들이 이자도 한 푼 주지 않는 조건으로 수 백 억원대 CB를 마구 발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투자처를 찾지 못한 코스닥벤처펀드 운용사들이 꺼림칙한 CB를 받으려고 경쟁하고 있다.

한 증권사 IB(투자은행) 관계자는 "실적이나 재무건전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기업들이 제로금리 메자닌을 발행하고 있다"며 "천문학적인 자금을 빨아들인 코스닥벤처펀드의 등장이 만든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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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 청약 경쟁률이 폭등하면서 공모주 가격이 기업가치보다 과도하게 책정될 가능성이 있다. 기관이 끌어올린 공모주를 시장에서 매도할 경우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떠안을 수 있다.

코스닥벤처펀드가 눈먼 돈으로 인식되면서 일부 부실 코스닥 기업이 CB를 남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계에 몰린 기업이 청산되지 않고 ‘좀비 기업’으로 연명, 코스닥의 물을 흐릴수 있다.

코스닥벤처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이 펀드는 공모주나 메자닌을 의무적으로 담게 돼 있어 출혈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코스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않은 채 투자만 독려하다가 시장이 급락할 경우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펀드 수탁고가 줄지 않는 이상 같은 부작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도한 경쟁을 줄이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의 전제 조건인 CB 등 신주 인수비율 15%를 채우려고 과당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과도한 쏠림 현상을 막으려면 의무투자 비율을 1년 이내 달성하는 방식으로 기간을 정해 매수를 분산시키는 등 다양한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룡 전병윤 기자

코스닥벤처펀드, 관치펀드로 전락할 수 있어
[코스닥 흔드는 벤처펀드]②코스닥 육성위해 출범한 벤처펀드…녹색펀드·통일펀드 답습 가능성

코스닥벤처펀드에 부여한 과도한 '당근'이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시장의 이상신호를 살피지 못하면 과거 '녹색성장펀드'나 '통일펀드'처럼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사라진 관치펀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코스닥벤처펀드 '관치펀드' 전철 밟나= 이명박정부 시절 녹색산업 육성을 목표로 소득공제, 배당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주는 녹색성장펀드가 출범했다. 하지만 18개 녹색성장펀드 중 현재 남아 있는 펀드는 단 2개에 불과하다.

박근혜정부의 통일펀드도 5개 중 4개가 자투리펀드로 전락해 청산 과정을 밟았다. 펀드의 주목적 투자 대상이 불분명한데다 운용철학을 공감하지 못한 단기성 자금이 들락날락하며 실패로 이어졌다. 정부가 시장 수요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정책 달성의 수단으로서만 접근한 결과다.

지난 4월 출범한 코스닥벤처펀드는 코스닥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 정책 지원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1주라도 더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코스닥 공모주 시장에서 30%나 우선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특혜'가 시장 왜곡을 초래해 정책 달성을 훼방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거꾸로 한계에 몰린 기업이 코스닥벤처펀드로 쏠린 수조원의 과잉 유동성 덕분에 '좀비 기업'으로 연명하면서 우량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거나 투자자 수익률을 떨어뜨려 코스닥 시장의 모험 자본 공급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펀드가 코스닥 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을 다변화한 순기능이 있다"면서도 "과도하게 발생된 CB(전환사채)의 주식 전환이 일시에 집중될 경우 주주 권라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MT리포트] '2.7조 묻지마 투자' 벤처펀드의 네가지 함정
◇운용사 "투자할 곳 없다 호소"…제로금리 CB 사재기=
펀드 자산의 15% 이상은 벤처기업의 메자닌(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을 포함한 신주, 35% 이상은 벤처기업 해제 후 7년 이내인 코스닥 중소·중견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혁신기업은 펀드를 통해 모험자본을 유치하고, 투자자는 소액으로도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그런데 펀드로 돈은 계속 들어오는데 투자할 곳이 없다보니 공모가 산정과 CB(전환사채)·BW(교환사채) 발행이 정상적으로 이뤄질리 없다. 공모가는 폭등하고 CB 발행 조건은 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산운용사도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소형 운용사의 경우 펀드자산의 15% 이상을 벤처기업이나 메자닌에 의무적으로 투자하는게 부담이다. 공모 신주의 경우 수요예측에서 더 큰 돈을 베팅할 수 있는 대형 운용사가 유리하다. 게다가 메자닌 투자를 하려면 전담조직이 필요한데 이 조직을 갖추지 못한 영세한 곳이 많다. 무턱대고 펀드를 설정해 자금을 모아 투자를 시작한 운용사도 있다.

그런데도 일부 운용사는 발행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이른바 '배짱 CB'를 사기도 한다.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을 받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사실상 CB 수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이례적인 투자지만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을 받기 위해 '제로(0)' 금리 CB까지 사재기하듯 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5월29일 기준 10개 대표 코스닥 벤처펀드의 1개월 평균수익률은 마이너스(-)0.28%다.

전병윤 김명룡 기자

적자기업도 금리 0%로 수백억대 CB 발행
[코스닥 흔드는 벤처펀드]③코스닥벤처펀드 자금 넘쳐, 부실기업도 CB 마구발행

코스닥벤처펀드가 일부 자산을 무리하게 매수하고 있어 부실기업의 생명연장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스닥기업 엘앤케이바이오는 지난 25일 60억원 규모의 CB(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이 CB의 표면 및 만기 이자율은 모두 0%다. 또 리픽싱(전환가액재조정) 요건은 80%로, 통상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는 70%보다 높았다. 리픽싱 80%는 CB 발행 이후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발행회사가 전환가액의 80%는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리픽싱 비율이 높을수록 발행회사가 유리하다.

[MT리포트] '2.7조 묻지마 투자' 벤처펀드의 네가지 함정
엘앤케이바이오는 2017년 5월에도 10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는데, 그때는 만기이자율 2%, 리픽싱 70% 등 조건이 달랐다. 엘앤케이바이오는 지난해 영업손실 2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결국 실적도 나빠진 회사가 1년 만에 이자도 한 푼 주지 않고 주식 전환가격도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CB를 발행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코스닥벤처펀드 때문이다. 회사가 발행한 CB를 코스닥벤처펀드가 받아간 것이다.

올해 1분기 영업손실 20억원으로 적자전환 한 아진산업도 지난 28일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75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이 CB의 표면 및 만기 이자율은 0%, 리픽싱 요건은 75%다. 비디아이도 지난 18일 9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하면서 표면 및 만기 이자율을 모두 0%로 적용했다. 비디아이 역시 올해 1분기 적자전환했다. 양사의 CB 발행대상자에도 코스닥벤처펀드가 이름을 올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도 신용등급이 높거나 기술력이 뛰어나고 성장 가능성이 큰 유망 기업은 이자율 0%의 메자닌(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 발행이 가능했다"면서도 "다만 최근에는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는 부실 기업도 코스닥벤처펀드에 힘입어 줄줄이 제로금리의 메자닌을 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스닥벤처펀드 등장으로 메자닌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물량을 확보하려는 펀드 간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중간에 증권사가 주관사로 끼지 않고 운용사와 발행사가 직접 만나 메자닌 발행을 결정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당장 문을 닫아야 할 부실기업이 코스닥벤처펀드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부실기업 투자가 늘어날수록 펀드 수익률에도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높다.

한 코스닥 상장사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코스닥벤처펀드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몰리다 보니 자금이 급하지 않은 기업들까지 CB를 발행하는 사례가 있다"며 "제로금리 등 발행조건이 좋아서 우선 자금을 확보하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고 말했다.

김도윤 기자

1000대1 육박하는 코스닥 공모…묻지마 풀베팅

[코스닥 흔드는 벤처펀드]④코스닥벤처펀드 출시 이후 4개사 청약에 8.6조원 몰려
[MT리포트] '2.7조 묻지마 투자' 벤처펀드의 네가지 함정
코스닥벤처펀드가 공모주 시장의 수급균형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특히 시가총액 500억원 미만인 중소형주의 경우 일반 공모 물량이 많지 않아 '묻지마 투자'가 가속화됐다. 기관에 비해 정보가 취약한 개인투자자의 피해가 예상된다.

3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코스닥벤처펀드 출시 후 일반 공모로 코스닥에 상장했거나 상장을 진행 중인 4개사의 수요예측 평균 경쟁률은 793 대 1에 달한다.

제노레이(907.1 대 1) △현대사료(839.2 대 1) △세종메디칼(836.7 대 1)△파워넷(590.60 대 1) 등 4사 모두 과열 양상을 보였다.

이들 기업의 공모규모가 100억~200억원대에 불과한 중소형 공모주라는 점도 경쟁률을 높이는데 한 몫했다. 각 기업의 공모규모는 △제노레이 138억원 △세종메디칼 305억원 △현대사료 101억원 △파워넷 232억원이었다.

코스닥벤처펀드 운용사들이 가능한 많은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풀베팅'에 나서경쟁률이 폭등했다.

특히 이번 수요예측 과정에서 '의무보유 확약' 물량은 파워넷을 제외하고는 모두 30%대를 넘겼고, 발행사와 주관사에 사실상 매수조건을 위임한 '가격 미제시' 물량도 7.7~21.9%에 달했다. 이에 힘입어 제노레이·세종메디칼·파워넷은 공모가 상단 밖에서 공모가를 결정했다.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의 높은 경쟁률이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 4개 기업의 일반 청약공모에는 청약증거금 8조5913억원이 몰렸다.

하지만 이들 기업 주가는 상장 후 아찔한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8일과 29일 코스닥에 입성한 제노레이와 세종메디칼은 각각 공모가 대비 99.6%, 54% 오른 시초가를 기록하며 흥행했다. 그러나 제노레이는 31일 2만9950원으로 마감, 4거래일만에 상장 첫 날 종가 대비 25.2% 하락했다. 세종메디칼은 상장 후 이틀 연속 급등했지만 3일째에는 15% 이상 하락했다.

기관투자자들이 적정 기업가치를 분석해 장기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수급에 기댄 단타매매에 주력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이 떠안고 있다는 평가다.

공모주 시장에는 연 50조~60조원의 청약증거금이 오가지만 이를 연간 10조원이 안되는 국내 IPO시장이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코스닥벤처펀드 자금까지 유입돼 공모주 고평가 현상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벤처펀드 수익률을 공모주 30% 우선배정 투자로 끌어올려야 하는 운용사 로서는 사실상 장기투자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모주는 기관 포트폴리오에 편입되기보다는 상장 후 한두달에 거쳐 기관에서 개인으로 손바뀜되고 최대주주 보호예수가 풀리는 1년 후 주가는 공모가 수준도 지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스닥벤처펀드로 자금이 현재처럼 유입될 경우 공모주 투자가 과열되고, 공모가가 적정 기업가치 보다 과도한 수준으로 높아지는 현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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