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수사대가 막은 '팝체인' 상장…정부 '나몰라라'

머니투데이 남궁민 기자 2018.05.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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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천억원 오가는데 감독 없는 가상통화 시장…상장 관련 법규도 '전무'

대표적인 가상화폐(암호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1000만원 아래로 급락한 2일 오후 서울 중구 한 가상화폐 거래소의 시세 전광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대표적인 가상화폐(암호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1000만원 아래로 급락한 2일 오후 서울 중구 한 가상화폐 거래소의 시세 전광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작전' 의혹을 받고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팝체인(PCH) 상장이 무산됐지만 불신이 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 질서를 확립해야 할 정부는 연이은 논란에도 손 놓고 있다. 상장 관련 법규도 전무해 '상장 사기'가 발생해도 처벌할 방법이 마땅찮다.

지난 16일 빗썸은 전날 발표했던 팝체인 상장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다. 상장 발표 직후부터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팝체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팝체인이 2개의 지갑(가상통화를 보관하는 일종의 계정)에 91.54%의 물량이 몰려 있고, 다른 가상통화의 소스코드를 베껴서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팝체인을 발행한 THE E&M의 사업 전망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하루 수천억원 오가는데…정부 '나몰라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통화 관련 관계차관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통화 관련 관계차관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들은 팝체인 상장이 가상통화 시장 전체의 신뢰를 떨어트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빗썸이 무리한 시도를 했다"며 "만약 예정대로 상장됐다면 시장 자체를 망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빗썸은 국내 2위, 세계 7위(18일 코인힐스 기준) 가상통화 거래사이트다.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단 뜻이다.



문제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몇 달 새 가상통화 상장 관련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는데 나몰라라다. 현재 정부의 가상통화 관련 대응은 국무조정실로 일원화됐지만, 가상통화 관련 발표는 지난 1월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는 은행, 증권업계와 달리 가상통화 시장은 감독 부처도 없다. 국내 금융거래를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은 핀테크지원실 아래 '블록체인 연구반'이라는 연구조직이 있을 뿐 가상통화 시장에 대한 상시적 감독에 나서고 있지 않다. 하루 거래량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시장이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월 가상통화 거래사이트의 불공정약관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는 공정위도 상시 감독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문제가 된 약관의 경우 공정위가 들여다보고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그외 거래사이트에 대한 상시 감독 업무를 맡고 있진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상장과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가 사실이라도 손 쓸 도리가 없다. 처벌 법규가 없기 때문. 거래사이트가 스캠(가짜 코인을 이르는 말)을 상장시켜 판매한다 하더라도 법률상 가상통화 지위가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적용할 규정도 없다. 특히 상장과 관련된 법규는 전무하다.

◇해외에선 가상통화 관련 법률 정비해 제도권 흡수

가상통화 거래 허가제(비트라이센스)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 뉴욕주의 경우 거래사이트가 금융당국과 협의없이 가상통화를 상장할 경우 언제든 면허를 회수할 수 있다. 또한 각국에서 가상통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법률이 정비되면서 기존 제도에 의한 규제도 시행되고 있다.


가상통화가 불법도 합법도 아닌 영역에 방치되면서 관련 업계는 한껏 움츠러들었다. 한 가상통화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사업내용에 블록체인의 '블'만 들어가도 은행 대출은 커녕 계좌도 못 만든다"며 "정부는 은행 자율이라고 하지만 정부에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으니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전하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이번 논란이 발생한 이후에도 한 번도 당국과 연락을 나눈 적이 없다. 감독을 맡은 기관이 없다"면서 "하루에도 수천억원씩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시장에 대해 정부가 이렇게까지 손을 놓고 있어도 되나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위원장은 "정부가 아무런 규칙도 내놓지 않고 있다가, 갑작스레 엄포를 놓는 방식을 반복한다"며 "시장 질서를 만들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시장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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