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화재 땐 화장실로"…건설기술硏 개발 '대피소'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8.01.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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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도 못고치는 나라]"열 차단 등 골든타임 확보"

화장실을 대피공간으로 활용한 모습/사진=건설기술硏화장실을 대피공간으로 활용한 모습/사진=건설기술硏


고양시외버스터미널 화재(2014년 5월), 의정부 오피스텔 화재(2015년 1월), 쌍문동 아파트 화재(2016년 9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12월) 그리고 지난 26일 38명의 사망자와 150명의 부상자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까지, 일련의 화재 참사에는 공통점이 많다.

건물 내 대피 경로가 차단됐거나 복잡했다는 점이다. 화재 참사가 발생한 5곳 모두 마땅한 건물내 피난공간이 없었다. 그동안 피난로로 인식됐던 비상계단의 경우,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했다. 화재와 유독 가스가 삽시간에 퍼지는 굴뚝 효과 때문이다. 갑자기 큰 불이 났을 경우 구조 전까지 열과 유독가스로부터로 몸을 피할 수 있는 건물 내 공간은 없을까.
수막형성 방화문 개념도/자료=건설기술연수막형성 방화문 개념도/자료=건설기술연
이런 상황에서 건물 각층에 소재한 화장실을 화재발생 시 긴급 피난공간으로 활용하는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하 건설기술연)이 개발한 ‘화장실 대피소’가 대표적이다.



이 기술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골든 타임’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문 표면에 수막을 형성하는 ‘수막형성 방화문’, 기본 배기를 급기로 전환하는 ‘급기가압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급기가압시스템 개념도/자료=건설연급기가압시스템 개념도/자료=건설연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은 뒤 비상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화장실 문 위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쏟아져 문 표면에 수막을 형성한다. 이는 화장실 문 틈새를 막아 열기를 차단하고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다. 또 급기 가압 시스템을 통해 외부의 신선한 공기가 공급되고 연기 침입이 차단된다. 급기 가압 시스템은 자체 배터리로 작동돼 정전 사태가 발생해도 정상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바깥 공기를 공급해 화장실 내부 기압이 높아지게 함으로써 연기·유독가스가 화장실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공기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아래층·위층 화장실 배수구를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연기도 막는다.

건설기술연이 내화 성능 실험을 실시한 결과, 화장실 대피소 내부에서 1시간 동안 버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대원이 화재 초기 진압 후 인명 구조를 위해 건물 내부로 진입할 때까지의 시간을 충분히 벌어준다는 설명이다. 화장실 내부 일산화탄소 농도는 실험시간 동안 1ppm 이하를 유지했다. 이는 터널 내부 공기질에 해당한다.



아파트 실물 화재 실험 결과 화장실 문과 공간이 그대로 유지됐다/사진=건설기술연아파트 실물 화재 실험 결과 화장실 문과 공간이 그대로 유지됐다/사진=건설기술연
건설기술연에 따르면 화장실 대피소는 하루 만에 설치할 수 있고 아파트처럼 대량으로 만들 경우 시공비가 50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건설기술연 화재안전연구소 유용호 연구위원은 “대형화재가 발생하면 가스와 연기가 불과 수초, 수분 내에 퍼지기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가기 힘들뿐더러 비상계단을 통한 대피도 노약자·장애인·임산부의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제약이 있다”며 “이런 경우 화장실로 대피해 구조를 기다리는 게 생존율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실 대피소는 1992년 이전에 지어져 피난시설이 없는 아파트, 요양병원 등 노약자 시설, 노후아파트 재건축 등에 적합하다. 실제로 GS건설은 건설기술연으로부터 이 기술을 이전 받아 1984년 지어진 청담동 진흥아파트 10가구를 대상으로 ‘화장실 대피공간’ 설치 시범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 아파트는 당시 관련 규정이 없어 경량 칸막이, 대피공간, 하향식 피난구와 같은 화재 대피 시설이 없다.


유 연구위원은 “노후 아파트에 별도의 방화문이 딸린 대피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공간 확보, 공사비용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피난 접근성, 노약자 사용성, 화재대응 구조 안전성, 경제성 등을 두루 갖춘 이 기술은 최적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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