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멸 아닌 공생의 존재 ‘미생물’…“지구 지키는 원초적 생명력”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8.1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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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공생의 세계로 떠나는 미생물 투어

박멸 아닌 공생의 존재 ‘미생물’…“지구 지키는 원초적 생명력”


흔히 세균으로 불리는 미생물은 박멸해야 할 존재로 여긴다. 만약 미생물을 모조리 없애면 지구 상의 모든 감염병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미생물이 사라지면 지구도 사라진다.

미생물의 보이지 않은 엄청난 역할과 생명력은 도처에 퍼져있다. 우리가 다만 인식하지 않고 관심 두지 않을 뿐. 최소한의 악을 행한다고 최대의 선을 포기할 수 없다. 미생물은 그런 존재다.



45억 4000만 살 먹은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해서 생명체의 거주 시점을 요약해보면, 인간이 지구에 머문 시간은 겨우 30분 정도다. 공룡은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한 12월 26일 때까지 지배하다 사라졌다. 꽃과 포유동물은 12월 초에 진화했고 식물은 11월쯤 육지에 상륙했다. 10월 이전엔 대부분 생명체가 단세포였다. 이 ‘지각생’들보다 가장 먼저 생명의 시작을 알린 존재는 미생물로, 3월부터 10월까지 지구를 이끌었다.

미생물은 7개월간 지구를 비가역적으로 바꿨다. 오염 물질을 분해하고 탄소, 질소, 황 같은 원소들을 화합물로 전환해 동식물에 공급했다. 노폐물로 배출한 산소는 지구의 대기 조성까지 영원히 바꿔놓았다. 산소화된 세상에 살게 된 건 전적으로 미생물 덕분이다.



고생물학자 앤드루 놀은 미생물의 역할에 대해 “진화사에서 세균이 케이크라면, 동물은 그 표면에 바른 달착지근한 크림”이라고 했다.

진화의 관점에서도 우리는 미생물로부터 진화했다. 핵과 내골격, 미트콘드리아를 지닌 동물 같은 진핵생물은 독립적 세균의 우연한 합병으로 탄생했다. 다세포생물의 탄생을 알린 시작이었다. 생물이 ‘다세포’를 지니며 처음으로 커졌고, 몸속에 세균과 기타 미생물의 거대 집단을 수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약 30조 개의 인간 세포와 39조 마리의 미생물로 구성돼 있다. 세포는 2만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미생물의 그것은 이보다 500배나 많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미생물’인 셈이다.


미생물을 향한 언론의 공격은 변기 시트에 세균이 우글거리는 식의 기사에서 보듯, 불결과 질병의 상징으로 향한다. 하지만 세균 가운데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종은 100가지 미만인 데 비해, 위장관에 서식하는 수천 가지 종은 대부분 무해하다. 복어가 세균을 이용해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독을 생성,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처럼, 인간의 세균도 향균물질을 분비해 위험한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질병을 쫓아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생물은 음식물을 분해하고 면역계를 조절해주며 비타민과 미네랄을 생성하는 등 인간과 하나의 ‘팀’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미생물과 동물의 파트너 십이 깨어질 때, 숙주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하기도 한다. 산호초의 집단 폐사나 장내 미생물의 혼란으로 인한 심각한 질병들이 그 예다.

미생물이 사라지면 초식 동물은 식물의 질긴 섬유질을 분해할 수 없어 굶어 죽을 것이고 인간이 사육하는 가축도 사라진다. 또 질소를 공급하지 못해 지구는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겪고 결국 먹이사슬이 붕괴 돼 지구 상의 대부분의 종은 멸종할지 모른다.

책은 미생물이 소독과 박멸의 대상에서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좌우하는 핵심 열쇠로 떠오르기까지 발견된 새로운 역사가 오롯이 담겼다.

저자는 “미생물이 비만, 염증성 장 질환 같은 질병에서 우울증, 자폐증 같은 정신건강까지 미치는 영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미생물이 인간과 평화롭게 사는 공동체 존재로, 숙주와 똑같은 장소를 점유하는 공동 거주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어크로스 펴냄. 504쪽/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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