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인간, 로봇의 반란을 상상하다

머니투데이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2017.06.24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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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 닮은 오토마타에서 인간 공격하는 로봇으로: 로봇에 갈망과 두려움 담다

그림 1~2. 로봇 알파와 당시 사고에 대한 언론의 보도그림 1~2. 로봇 알파와 당시 사고에 대한 언론의 보도


1932년, 영국의 발명가 해리 메이는 단어를 발음하고 신문을 읽는 로봇 알파를 만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신문에도 크게 보도됐던 이 로봇은 무선으로 조종해서 걸어 다닐 수도 있고, 권총을 발사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순회 전시를 하던 어느 날, 메이는 알파를 조종해서 걸어가게 한 뒤에 권총을 집어 총을 발사하는 시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파가 메이에게 권총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아닌가? 신문들은 메이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 인간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인간이 발명한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입힌 최초의 사건으로 회자 됐다. 로봇 알파와 발명가 메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오토마타(자동인형)에서 로봇으로

사람을 닮고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에 대한 갈망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과 그리스에는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에 대해 믿기 힘든 얘기가 많았고, 중세 서양의 교회에서도 움직이는 예수상과 악마상을 만들어서 신도들의 경외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16세기 유럽의 귀족과 황실은 화려하고 비싼 정원을 꾸미면서 여기에 수압을 이용해 움직이는 조각상들을 설치하고 구경 온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젊은 데카르트는 앙리4세의 생제르망 정원에서 도망가는 다이애너와 삼지창을 휘두르는 포세이돈 상을 보고, ‘동물이 기계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문제를 고민했다.

그림3. 생제르망 활싱 정원에 꾸며진 오토마타(자동인형).그림3. 생제르망 활싱 정원에 꾸며진 오토마타(자동인형).
유럽의 18~19세기는 자동인형 제작의 전성기였다. 프랑스 엔지니어 보캉송은 똥 싸는 오리와 플롯을 부는 남자를 제작했다. 그는 지금 오르골에서 보는 원통형의 드럼을 사용했고, 추와 수백 개가 넘는 부품을 써서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모사했다. 스위스의 시계제작자 자케드로는 글을 쓰는 사람, 피아노 치는 여인 같은 정밀한 자동인형을 만들었는데, 피아노를 치는 여인의 얼굴에는 자신의 피아노 소리에 취한 것 같은 감정까지 표현되었다. 그의 자동인형은 6,000개의 부품을 사용할 정도로 정교한 것이었다. 18세기 후반, 헝가리의 귀족 볼프강 켐펠렌은 (비록 가짜였지만) 체스를 두는 기계를 만들어 유명한 체스 애호가들을 격파하기도 했다.

이런 자동인형은 당시에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독일의 작가 E.T.A. 호프만은 ‘모래 사나이’와 ‘자동인형’에서 사랑하던 사람이 사실은 자동인형이었음을 알았을 때 생기는 기괴한 감정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 개념으로 널리 퍼트린 ‘기괴한’(unheimlich, uncanny) 느낌도 여기서 유래했다.


그림4~5. 보캉송과 자케드로의 자동인형들.그림4~5. 보캉송과 자케드로의 자동인형들.
이 시기 자동인형은 숱한 문학적 담론과 철학적 논의를 불러일으켰지만, 이것들이 추나 태엽을 사용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즉, 자동인형은 그 생김새나 정교한 운동 때문에 기괴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어도, 인간에게 위협적이기는 힘들다. 당시에 많은 자동인형이 만들어졌지만 걸어 다니는 자동인형조차 없었다. 매리 셸리가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기계가 아닌 유기체로 생명을 만드는 방식을 택한 것도 당시 자동인형의 이런 한계 때문일 수 있다.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피조물은 키가 2미터 40센티로 사람보다 훨씬 컸고,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강한 힘을 이용해서 자신을 만든 주인을 파멸시켰다.

19세기 전반기는 증기기관의 시대였고, 후반기는 강철과 전기의 시대였다. 새로운 동력과 재료가 개발되면서, 이를 이용한 자동인형에 대한 상상이 이어졌다. 뉴욕에서 발행하던 어린이 신문 ‘뉴욕의 소년들’은 1870년대에 “프랭크 리드와 초원의 증기 인간”이라는 소설을 연재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증기 인간은 증기로 움직이는 철제 로봇 비슷했다. 이 증기 인간은 말 대신에 마차를 몰았을 정도로 힘이 셌고, 위험에 처한 주인공을 구해주는 착한 로봇이었다. 이제 악하고 타락한 로봇의 등장은 시간문제였다.

◇ 로봇의 반역과 'R.U.R.'

1909년, 미국 작가 앰브로스 비어스는 장인이자 발명가인 마스터 목슨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모손의 마스터(주인)'를 발표했다.

목슨은 체스 두는 기계를 만든 뒤에 이 기계와 체스를 둬 승리한다. 그러나 게임에서 진 체스 기계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주인 목슨을 살해한다. 책 제목은 마스터 목슨과 기계의 관계가 역전돼 목슨이 만든 기계가 그의 마스터로 변신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을 살해하는 내용을 담은 첫 번째 소설로 꼽힌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에게 반역하는 테마는 1921년에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 ‘R.U.R.’(Rossum’s Universial Robots,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극적으로 다시 등장했다. 이 책은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쓴 책으로도 유명한데. 차페크는 로봇이란 단어를 고된 일,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의 ‘로보타’(robota)에서 가지고 왔다.

실제 이 희곡에서 로봇은 인간의 고된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로 나온다. 이들은 기계적으로 완벽하고 높은 지능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영혼이나 감정이 없어 주어진 일을 불평 없이 수행하는 충직한 존재이다. 로봇이 생산과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사회에서 물건 가격은 공짜에 가까울 정도로 하락했고, 인간은 로봇에게 일을 맡기고 여유 있는 일상을 누린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로봇이 반란을 꾀한다는 게 이 작품의 플롯이다.

그림6. 연극으로 상영된 'R.U.R.'에서 로봇 라디우스가 여주인공 헬레나에게 "나는 어떤 주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그림6. 연극으로 상영된 'R.U.R.'에서 로봇 라디우스가 여주인공 헬레나에게 "나는 어떤 주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로봇의 반란은 로봇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시작된다. 로봇 라디우스는 여주인공 헬레나에게 "나는 어떤 주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외친다. 인간에게 반기를 든 로봇은 공장을 장악하고 공장 엔지니어들을 고립시킨 뒤에 살해한다. 로봇의 설계와 생산을 책임지는 알퀴스트는 부르짖는다. "난 과학을 저주해! 과학기술을 저주한다고! 우리는 실수한 거야! 우리의 과대망상증을 위해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진보를 위해서. 모르겠어, 어떤 거대한 무언가를 위한답시고 우린 인류를 살해한 거야!"

그림7. 'R.U.R.'에서 로봇의 반란.그림7. 'R.U.R.'에서 로봇의 반란.
그동안 충직했던 로봇은 왜 반란을 일으켰을까? 여주인공 헬레나는 로봇의 인권을 주장하던 운동단체의 회원이었는데, 그녀는 똑똑한 로봇 라디우스에게 독서를 권하고 (이후 라디우스는 자신이 인간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얘기한다), 공장의 로봇들이 인간을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연구책임자에게 로봇을 고쳐 영혼을 넣어 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인간보다 강한 힘과 기계적 특성을 가진 로봇은 감정과 영혼을 얻은 뒤에 자연스럽게 인간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하게 된 셈이다. 헬레나의 남편이자 공장의 주인인 도민은 로봇이 인간의 영혼을 가지면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얘기를 듣고 부르짖는다. "아, 헬레나! 세상에 그 무엇도 인간만큼 인간을 증오할 수 있는 존재는 없어. 돌덩이를 인간으로 변신시켜 보라고. 그러면 그들은 우릴 돌로 쳐서 죽일 거야."

반란을 일으킨 로봇은 알퀴스트를 제외한 모은 인간들을 살해한다. 알퀴스트를 살려준 이유는 남녀가 짝을 지어 번식할 수 없는 자신들을 개량하기 위해서였다.

희곡의 끝은 서로 사랑하는 남녀 로봇이 상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자발성을 보이고, 알퀴스트는 연민과 희생정신을 보이는 이 남녀 로봇이 새로운 세상에서 생식 능력을 가진 아담과 이브가 됐음을 선언한다. 인간이 사라진 땅에서 로봇이라는 새로운 종이 시작하는 것이다.

차페크의 ‘R.U.R.’을 인간 대 기계의 대립 구도로만 읽는 것은 한계가 있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노동을 의미한 데에서도 볼 수 있듯이, ‘R.U.R.’은 기계문명 사회에서 인간 노동의 의미를 다시 짚어주기 때문이다.

노동이 사라진 미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식을 낳지 않는다. 아니, 자식을 낳지 못한다. 헬레나는 로봇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한탄하며, 알퀴스트는 사람들이 자식을 못 낳는 이유가 노동한 지가 오래돼서, 즉 힘든 일을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신이여, 사람들을 예전의 고뇌와 노동으로 돌려 보내주소서. 우리로부터 로봇을 도로 가져가 주소서”라고 부르짖는다.

그림8. 1929년에 영국에서 제작된 첫 로봇 에릭의 가슴에는 차페크의 책 제목 R.U.R.이 새겨져 있었다. 그림8. 1929년에 영국에서 제작된 첫 로봇 에릭의 가슴에는 차페크의 책 제목 R.U.R.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서 자식은 미래의 희망을 상징한다. 인간이 노동을 중단하면서 현재가 풍족해졌지만, 미래의 희망은 사라졌다. 인류를 절멸시킨 로봇이 기적적으로 생식 능력을 회복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보듯이, 차페크는 희망이 노동하는 존재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R.U.R.’에서 로봇의 반란은 인간 노동을 경시하는 세상에 대한 노동자의 반란인 것이다.

◇ 왜 로봇의 역습인가

1929년, 자본주의 경제가 붕괴했다고 느낄 정도의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미국에서만 수천 개의 은행과 수십만 개의 기업이 도산했다. 생산은 1/4로 감소하고, 임금은 반 토막이 났으며, 노동 인구의 절반가량이 실업자거나 이 비슷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잘나가던 자본주의 경제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폭삭 주저앉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던 생각은 공장에 도입된 기계가 노동자들을 쫓아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소비의 약화나 과잉 투자 같은 요소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공장에서 돌아가는 자동 기계는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1932년에 주인을 쐈던 로봇 알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발명가 메이는 로봇 시연을 준비하면서 총에 화약을 넣고 있었는데, 화약을 잘못 다루면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 부상당했다. 이 사건이 로봇이 주인에게 총을 겨누고 발사했다고 보도된 것이다. 실제 사건에 비해 상당한 상상과 과장이 개입된 보도였다. 무엇이 이런 상상과 과장을 가능하게 했을까?

그것은 실업이 만연하던 대공황 시기에 공장에 도입된 자동기계들이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인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복잡한 사회문제의 원인을 기계에서 찾은 사람들이 주목한 것이 로봇의 역습이었다.

사람들은 차페크의 ‘R.U.R.’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 로봇이 곧 인간을 공격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뜬금없이 무대에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신에 대해서 '기계에서 나온 신'(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이라는 냉소적인 표현을 썼는데, 193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면서 뜬금없이 나타난 로봇은 세상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존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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