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2. 로봇 알파와 당시 사고에 대한 언론의 보도
미국에서 순회 전시를 하던 어느 날, 메이는 알파를 조종해서 걸어가게 한 뒤에 권총을 집어 총을 발사하는 시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파가 메이에게 권총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아닌가? 신문들은 메이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 인간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인간이 발명한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입힌 최초의 사건으로 회자 됐다. 로봇 알파와 발명가 메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을 닮고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에 대한 갈망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과 그리스에는 스스로 움직이는 인형에 대해 믿기 힘든 얘기가 많았고, 중세 서양의 교회에서도 움직이는 예수상과 악마상을 만들어서 신도들의 경외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림3. 생제르망 활싱 정원에 꾸며진 오토마타(자동인형).
이런 자동인형은 당시에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독일의 작가 E.T.A. 호프만은 ‘모래 사나이’와 ‘자동인형’에서 사랑하던 사람이 사실은 자동인형이었음을 알았을 때 생기는 기괴한 감정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 개념으로 널리 퍼트린 ‘기괴한’(unheimlich, uncanny) 느낌도 여기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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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5. 보캉송과 자케드로의 자동인형들.
19세기 전반기는 증기기관의 시대였고, 후반기는 강철과 전기의 시대였다. 새로운 동력과 재료가 개발되면서, 이를 이용한 자동인형에 대한 상상이 이어졌다. 뉴욕에서 발행하던 어린이 신문 ‘뉴욕의 소년들’은 1870년대에 “프랭크 리드와 초원의 증기 인간”이라는 소설을 연재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증기 인간은 증기로 움직이는 철제 로봇 비슷했다. 이 증기 인간은 말 대신에 마차를 몰았을 정도로 힘이 셌고, 위험에 처한 주인공을 구해주는 착한 로봇이었다. 이제 악하고 타락한 로봇의 등장은 시간문제였다.
◇ 로봇의 반역과 'R.U.R.'
1909년, 미국 작가 앰브로스 비어스는 장인이자 발명가인 마스터 목슨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모손의 마스터(주인)'를 발표했다.
목슨은 체스 두는 기계를 만든 뒤에 이 기계와 체스를 둬 승리한다. 그러나 게임에서 진 체스 기계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주인 목슨을 살해한다. 책 제목은 마스터 목슨과 기계의 관계가 역전돼 목슨이 만든 기계가 그의 마스터로 변신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을 살해하는 내용을 담은 첫 번째 소설로 꼽힌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에게 반역하는 테마는 1921년에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 ‘R.U.R.’(Rossum’s Universial Robots,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극적으로 다시 등장했다. 이 책은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쓴 책으로도 유명한데. 차페크는 로봇이란 단어를 고된 일,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의 ‘로보타’(robota)에서 가지고 왔다.
실제 이 희곡에서 로봇은 인간의 고된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로 나온다. 이들은 기계적으로 완벽하고 높은 지능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영혼이나 감정이 없어 주어진 일을 불평 없이 수행하는 충직한 존재이다. 로봇이 생산과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사회에서 물건 가격은 공짜에 가까울 정도로 하락했고, 인간은 로봇에게 일을 맡기고 여유 있는 일상을 누린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로봇이 반란을 꾀한다는 게 이 작품의 플롯이다.
그림6. 연극으로 상영된 'R.U.R.'에서 로봇 라디우스가 여주인공 헬레나에게 "나는 어떤 주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그림7. 'R.U.R.'에서 로봇의 반란.
반란을 일으킨 로봇은 알퀴스트를 제외한 모은 인간들을 살해한다. 알퀴스트를 살려준 이유는 남녀가 짝을 지어 번식할 수 없는 자신들을 개량하기 위해서였다.
희곡의 끝은 서로 사랑하는 남녀 로봇이 상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자발성을 보이고, 알퀴스트는 연민과 희생정신을 보이는 이 남녀 로봇이 새로운 세상에서 생식 능력을 가진 아담과 이브가 됐음을 선언한다. 인간이 사라진 땅에서 로봇이라는 새로운 종이 시작하는 것이다.
차페크의 ‘R.U.R.’을 인간 대 기계의 대립 구도로만 읽는 것은 한계가 있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노동을 의미한 데에서도 볼 수 있듯이, ‘R.U.R.’은 기계문명 사회에서 인간 노동의 의미를 다시 짚어주기 때문이다.
노동이 사라진 미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식을 낳지 않는다. 아니, 자식을 낳지 못한다. 헬레나는 로봇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한탄하며, 알퀴스트는 사람들이 자식을 못 낳는 이유가 노동한 지가 오래돼서, 즉 힘든 일을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신이여, 사람들을 예전의 고뇌와 노동으로 돌려 보내주소서. 우리로부터 로봇을 도로 가져가 주소서”라고 부르짖는다.
그림8. 1929년에 영국에서 제작된 첫 로봇 에릭의 가슴에는 차페크의 책 제목 R.U.R.이 새겨져 있었다.
◇ 왜 로봇의 역습인가
1929년, 자본주의 경제가 붕괴했다고 느낄 정도의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미국에서만 수천 개의 은행과 수십만 개의 기업이 도산했다. 생산은 1/4로 감소하고, 임금은 반 토막이 났으며, 노동 인구의 절반가량이 실업자거나 이 비슷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잘나가던 자본주의 경제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폭삭 주저앉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던 생각은 공장에 도입된 기계가 노동자들을 쫓아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소비의 약화나 과잉 투자 같은 요소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공장에서 돌아가는 자동 기계는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1932년에 주인을 쐈던 로봇 알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발명가 메이는 로봇 시연을 준비하면서 총에 화약을 넣고 있었는데, 화약을 잘못 다루면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 부상당했다. 이 사건이 로봇이 주인에게 총을 겨누고 발사했다고 보도된 것이다. 실제 사건에 비해 상당한 상상과 과장이 개입된 보도였다. 무엇이 이런 상상과 과장을 가능하게 했을까?
그것은 실업이 만연하던 대공황 시기에 공장에 도입된 자동기계들이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인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복잡한 사회문제의 원인을 기계에서 찾은 사람들이 주목한 것이 로봇의 역습이었다.
사람들은 차페크의 ‘R.U.R.’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 로봇이 곧 인간을 공격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뜬금없이 무대에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신에 대해서 '기계에서 나온 신'(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이라는 냉소적인 표현을 썼는데, 193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면서 뜬금없이 나타난 로봇은 세상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존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