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간 앉기 연습만 수백번"…'자폐아 화가' 캘빈의 성장기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7.06.16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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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모아 '자폐아의 눈으로 본 행복한 세상'전 개최…어머니 신영춘씨 "자폐아 부모들에게 용기 주고 싶어"

자폐증의 일종인 '서번트 증후군'을 진단 받은 화가 캘빈 신이 그림으로 그린 자신의 모습 옆에 섰다. 오는 27일까지 서울 서교동 '갤러리815'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사진=박다해 기자자폐증의 일종인 '서번트 증후군'을 진단 받은 화가 캘빈 신이 그림으로 그린 자신의 모습 옆에 섰다. 오는 27일까지 서울 서교동 '갤러리815'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사진=박다해 기자


책상 앞에 1분 동안 가만히 앉아있기 위해 선생님과 2시간 동안 '레슬링' 같은 사투를 수 백 번씩 벌여야 했다. 하루 6시간씩 2년 넘게 연습하고 나서야 영어 대문자를 겨우 습득했다. 자폐증의 일종인 '서번트 증후군'을 진단받은 캘빈 신(22)의 하루하루는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그를 다르게 만드는 점은 바로 그림이다. 만화 일러스트를 연상케 하는 그의 그림은 사진을 찍듯이 장면을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의 영향을 톡톡히 받는다. 잠깐 본 이미지도 생생하게 떠올리는 직관적인 기억력은 서번트 증후군의 특징 중 하나다. 캘빈의 그림엔 자신이 본 만화나 영화 속 인물 여러 명이 병치된다. 그의 기억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이들은 밝고 경쾌한 색감으로 묘사된다. 마치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아름답고 흥미진진하다는 걸 말해주는 듯 하다.



캘빈은 매일 10시간씩 그림 그리기에 매진한다. 주제도 만화 속 캐릭터에서 역사적인 장면까지 점점 변화한다. /사진=박다해 기자캘빈은 매일 10시간씩 그림 그리기에 매진한다. 주제도 만화 속 캐릭터에서 역사적인 장면까지 점점 변화한다. /사진=박다해 기자
13일 서울시 서교동 '갤러리815'에서 만난 캘빈은 이날도 색연필을 꼭 쥔 채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매일 10시간 넘게 그림 그리기에 매진한다는 그의 손엔 굳은 살이 단단히 배겼다.

"가끔은 밤에 몰래 일어나서 그려요. 그림이 이렇게까지 좋나 싶죠. 어쩌면 한가지 일에 몰입하는 것도 자폐증의 특징이자 장점인 것 같아요."



어머니 신영춘씨는 좀처럼 도화지에서 눈을 떼지 않는 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국에서 살던 그가 한국에서 캘빈의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은 그림의 진가를 알아본 김광우 갤러리815 관장 덕이다. 갤러리815는 오는 27일까지 캘빈의 그림을 모아 '캘빈의 서번트 드로잉-자폐아의 눈으로 본 행복한 세상' 전시를 개최한다.

신씨는 최근 캘빈의 이야기를 담은 책 '행복한 서번트-캘빈 이야기'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받은 교육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혹시 한국의 자폐아 부모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 정말 조심스러웠다"면서도 "캘빈을 키울 때도 관련 책이나 롤모델이 굉장히 도움 됐기 때문에 (캘빈이) 실제로 어떤 교육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책에 감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덜어내고 캘빈의 교육법을 상세하게 담은 이유다. 신씨는 "상대적으로 미국은 장애인 교육을 위한 정부 지원 시스템이 탄탄한 편"이라며 "자폐아를 둔 부모들만 평생 모든 짐을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소리를 높여 법이나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싶어 쓴 것도 있다"고 했다.


캘빈(왼쪽)과 어머니 신영춘씨. 신씨는 최근 캘빈의 교육법을 담은 책 '행복한 서번트,캘빈 이야기'를 펴내기도 했다. /사진=박다해 기자캘빈(왼쪽)과 어머니 신영춘씨. 신씨는 최근 캘빈의 교육법을 담은 책 '행복한 서번트,캘빈 이야기'를 펴내기도 했다. /사진=박다해 기자
캘빈의 어린 시절, 매일 같이 사투를 벌여야 했던 신씨는 색연필과 함께 찾아온 요즘의 '평화'가 가끔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캘빈이 처음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캘빈은 찰흙으로 공룡을 빚으면서 근육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움직이는 동작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 때 처음 신씨는 캘빈에게 색연필을 사줬다.

"지나가는 강아지를 더 부러워했던 적도 있어요. 강아지도 훈련을 하면 터득할 수 있는 일들을 (캘빈은) 못했으니까요. 방향 감각도 인지 능력도 없었죠. 1분 동안 겨우 앉아있던 의자에서 10분, 15분을 넘어 40분까지 앉아있을 때는 정말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요즘도 가끔은 캘빈을 챙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리는 꿈을 꾸다가 벌떡 깨곤 해요."

신씨가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캘빈은 어느새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왜 좋냐고 묻자 "나는 좋은 미술가니까요"(I'm a good artist)란 답이 돌아온다. 매일 빼먹지 않고 '원더풀', '베스트', '뷰티풀' 등의 단어로 캘빈의 용기를 북돋웠다는 신씨의 사랑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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