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이 낳은 위대한 파카

로피시엘옴므 연시우 기자 2013.12.0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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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은 모든 아웃도어 아우터의 아버지를 탄생시켰다. 바로 피시테일 파카다.

피시테일 파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점퍼 스펙테이터.피시테일 파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점퍼 스펙테이터.


피시테일(뒷부분이 좌우로 벌어진 치마 같은 디자인) 파카는 1950년대 처음 생산되었다. 그 이름은 ‘최초의 유연한 형태의 옷, 즉 여차여차한 상황에서 이렇게 저렇게 입어도 훌륭한 선택이 되는, 쓰임이 만 가지인 옷’이라는 뜻이다. 어떤 기후나 조건에도 착용하기 적합하게 만든 옷으로 M-51 점퍼에 처음 접목했다. 피트는 여유롭고, 가볍고 튼튼한 면으로 만든 외피에 알파카 울 라이닝이나 여우 털 후드 트리밍을 달 수도 있다. 피시테일 파카의 각 지느러미는 다리를 감싸 체온을 높이는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낙하산 부대원을 공기역학적 방법으로 안전하게 보호해주었다.

피시테일 파카는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추위에 맞설 만한 시스템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고민을 하던 중 탄생되었다. 모자와 안감이 달린 코트 OD-7은 1945년에는 양모, 1947년에는 유리 섬유로 만들었는데 두 번 다 실패했다. 이후 디테일을 보완해 만든 점퍼가 M48이다. MA-1에서 영감을 받아 팔에 주머니를 덧대면서 최상위 모델이 출시된 것이다. 하지만 이 파카 스타일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1년 6월, 한국전쟁에서 보급된 M-51부터다. 슬리브 포켓을 뜯어내고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라이닝을 덧대면서 싼값에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더 많은 군대에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안감을 떼고 가볍게 입을 수 있었으며 겨울엔 필요에 따라 더 두꺼운 안감을 달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빼어난 방한 효과와 효율성 덕분에 피시테일 파카는 ‘플렉서블 클로딩’의 시장을 개척하며 아웃도어 파카의 아버지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많은 의류 업체가 정부에 군복을 납품하면서 동시에 민간인을 위한 민수용 제품을 만들어 공급했다. 기존 코트보다 튼튼하고 값은 훨씬 쌌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군용 파카를 사 입기 시작했다. 특히 N-3B의 경우 영국의 모든 학생이 겨울용 교복으로 활용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전쟁 이후, 군용 제품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그라지고 사람들은 전쟁이 아닌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피시테일 파카가 아니라 도시에서의 삶을 위한 파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피시테일 파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결국 도시에서의 삶을 위한 파카 역시 피시테일 파카를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한을 위한 주머니, 후드의 지퍼 디테일, 안감에 라이닝을 덧대는 방식, 겉감의 소재와 실루엣, 세부 디테일들은 피시테일 파카를 기반으로 조율되고 발전했다. 요즘 등장하는 모든 파카들이 갖추고 있는 허리 조임 끈이라든가 후드에 달린 털 트리밍, 가슴 주머니, 안감을 붙였다 뗄 수 있는 유틸리티 역시 모두 피시테일 파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글 연시우 기자(로피시엘 옴므 코리아)
사진 KIM JAE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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