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 장학생' 문재인, 유신반대 시위때…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12.12.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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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을 만나다-4]경희대 학생운동 '동지' 해직교사 출신 이상호씨

"할 수 없이 내가 선언문을 읽었다. 비가 내려 선언문이 젖었다. 그래도 내가 쓴 글이어서 문제없이 읽을 수 있었다." (문재인, '운명')

1974년 10월18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 교정에 학생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유인물이 뿌려졌다. 유신반대 시위였다. 어쩐 일인지 선언문을 읽기로 한 동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석에서 몇몇 학생이 시도했지만 학교 관계자들이 모두 제지했다.



3학년 문재인은 속이 탔다. "우리 팀은 아무도 모르게 시위 준비만 해준 후 잠적해 버리기로 했다"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이 연단에 올랐고, 동료들이 둘러싼 가운데 그는 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문재인 후보가 1974년 10월18일에 직접 작성하고 읽은 학생시위 유인물ⓒ이상호 전교조 해직교사 소송지원단장/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캠프 제공▲문재인 후보가 1974년 10월18일에 직접 작성하고 읽은 학생시위 유인물ⓒ이상호 전교조 해직교사 소송지원단장/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캠프 제공


질 낮은 등사기로 찍고, 그나마도 세월이 흘러 잊혀졌던 '구국선언문'이 38년 만에 문 후보를 만났다.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이상호 전교조 해직교사 소송지원단장이 선언문을 보관해왔다.



그 자신도 해직교사 출신인 이 단장은 여러 차례 수배를 받는 중에도 이 문서를 집안 깊숙한 곳에 숨겨뒀다. 꼭 문 후보 때문만은 아니다. 이 단장은 머니투데이와 만나 "경희대 민주화운동의 역사성이나 사립대 문제와 관련,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에 젖은 선언문'은 인간 문재인의 또 다른 이야기도 담고 있다. 이 단장은 "문재인은 기숙사비도 학교에서 주는 법대 장학생이었다. 데모를 하면 장학생 신분이 다 박탈되니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기획팀에 있었다. 그런데 74년 10월18일에는 그런 기득권을 버리고 (연단에) 나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상호 전교조 해직교사 소송지원단장. 경희대 역사학과(73학번)를 나와 교사로 일하다 전교조에 참여해 해직되기도 했다.▲이상호 전교조 해직교사 소송지원단장. 경희대 역사학과(73학번)를 나와 교사로 일하다 전교조에 참여해 해직되기도 했다.
이 단장은 "의기투합해서 악수를 하는데 말은 없지만 손은 뜨겁고, 눈빛이 번쩍이던 게 기억난다"며 "한번 한다면 끝까지 가는 사람"이라고 문 후보를 평가했다. 대선 도전에 대해서도 "평범한 변호사 가운데 한 명이 될 수 있었지만 선망의 길을 버리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자기희생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주 이 단장은 문 후보를 만나 고이 간직했던 선언문을 보여줬다. 74년 10월 초에 만든 '학교 정상화를 위한 결의문', 75년 문 후보 구속의 발단이 된 4월10일 비상학생총회 '대학인 행동강령선언'도 함께였다. 역시 문 후보가 쓴 글이다. 문 후보는 "내가 쓴 것 맞다"며 "이걸 어떻게 여태 보관 했나"라며 반가워했다.

이 단장은 "1989년 (전교조 사태 당시) 해직 교사들은 지금도 호봉이나 경력, 연금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문 후보가 당선돼 교육민주화유공자 특별법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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