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 홀대하고 '흑역사' 데려오고... 부끄러움은 왜 팬의 몫인가

김동윤 기자  |  2022.03.21 05:17
강정호./사진=뉴스1 강정호./사진=뉴스1
키움 히어로즈가 또 한 번 팬들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새로 생긴 상처가 아니다. 아물어가던 2년 전 큰 상처를 다시 헤집었다.


키움 구단은 지난 18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강정호에 대한 임의해지 복귀 승인을 요청했음을 알렸다. 승인은 형식에 불과했다. 요청 전에 이미 선수 계약을 체결했고, 비난 여론에도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이고 무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이렇게 되면서 상처받는 것은 팬들이다. 사건 전 강정호는 히어로즈의 자랑스러운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KBO리그 최초 40홈런 유격수였고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성공했다. 히어로즈를 창단 첫 한국시리즈로 이끈 핵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12월 공개된 CCTV와 함께 사랑받던 프랜차이즈 스타는 최악의 흑역사가 됐다.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 0.084%의 강정호는 서울 삼성역 인근 가드레일에 이어 건너편에 대기 중인 차들까지 덮칠 뻔한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후 운전자 바꿔치기를 강행한 것과 알려지지 않은 두 번의 음주운전(2009년, 2011년)이 더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음주 운전을 저지른 다른 선수들과 달리 2년 전 강정호의 복귀 시도가 무산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키움 구단은 그럼에도 강정호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강정호도 고민을 많이 했다. 세 번을 통화해 설득했다"고 영입 과정을 설명했다. 명분도 없었다. 구단의 이익보다 한 명의 섭섭함을 달래려는 모습이었다. 고형욱 단장은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37살인데 기량보다는 야구 인생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히어로즈 시절 서건창(왼쪽)과 박병호./사진=OSEN 히어로즈 시절 서건창(왼쪽)과 박병호./사진=OSEN


여기서 또 다른 히어로즈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서건창(33·LG)과 박병호(36·KT)에 대한 대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건창은 2012년 히어로즈에 입단해 신인왕, MVP, 타격왕 등을 수상해 신고선수 신화를 썼다. 어떻게든 안타를 치고 나가 한 베이스를 더 뛰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교수님'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히어로즈를 상징하는 선수가 됐다.

그런 서건창이 지난해 7월 떠났다. FA를 앞두고 2021시즌 전 자진 연봉 삭감을 하면서 이별이 예상됐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비록 LG 쪽에서 먼저 제시하긴 했으나, 키움 구단의 결정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이때 서건창은 착잡한 얼굴로 구단 유튜브를 통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로부터 5개월 뒤 키움 구단은 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냈다. 히어로즈 최초의 리그 MVP이자 홈런왕 박병호였다. 그는 2011년 트레이드로 합류해 이듬해부터 자신의 잠재력을 터트렸다. 수년간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군림하면서 비인기팀 히어로즈를 KBO리그의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다. 신생팀에 가장 중요한 팀컬러를 서건창, 박병호 두 사람이 확립해줬고 자연스레 이들은 팬들의 자부심이 됐다.

하지만 박병호도 FA가 되자 뒷전으로 밀렸다. KBO의 FA 공시가 11월 25일이었는데 키움 구단과 박병호의 첫 만남은 12월 7일이었다. 그마저도 안부만 묻고 끝났다. FA 첫 날 혹은 첫 주에 영입하고픈 선수에게 곧장 달려든 타 구단의 적극적인 행보와 비교하면 홀대라고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후 KT와 계약(3년 총액 30억 원)이 비교적 합리적인 규모인 것으로 평가되면서 더욱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KBO리그 10개 구단 팬덤 중 가장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인내한 것이 히어로즈 팬덤일 것이다. 구단의 재정이 풍족하지 않은 탓에 이들에게 대형 FA는 언감생심이었고 흠이 있는 선수를 지명 혹은 영입해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근 키움 구단의 행보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 부끄러움의 영역에 들어섰다.

스스로 정한 원칙과 약속을 깨면서까지 음주 운전 3회의 전과자를 품었다. 이중잣대의 이유라고 내놓은 말이 "야구 선수가 4년 쉬었으면 그만한 징계가 없다"는 것이어서 더욱 팬들을 민망하게 했다. 키움 구단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지키지 못해 씁쓸한 팬들에게 최소한 자괴감까지 느끼게 하진 말았어야 한다. 왜 부끄러움은 팬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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