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나달도 반대' 윔블던, 러시아 선수 출전 금지 논란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2.05.10 12:42
지난해 7월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이 열리고 있는 올 잉글랜드 테니스 클럽 전경.  /AFPBBNews=뉴스1 지난해 7월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이 열리고 있는 올 잉글랜드 테니스 클럽 전경. /AFPBBNews=뉴스1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이후 러시아 스포츠는 큰 타격을 입었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러시아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출전을 금지시켰다.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물론이고 러시아 축구 클럽도 UEFA(유럽축구연맹)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 참가도 할 수 없게 됐다. IPC(국제패럴림픽위원회)도 러시아의 2022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 출전권을 박탈했다.


국제 스포츠계는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연주되는 국가대항전인 월드컵과 패럴림픽에서 러시아 팀의 출전을 금지된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UEFA가 주관하는 유로파리그 16강에 올랐던 러시아 명문 클럽 스파르타크 모스크바가 실격 처리된 것에 대해서도 이견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는 6월 시작되는 영국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이 금지되자 곧바로 논란이 생겨났다.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5·세르비아)와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두 번 정상에 올랐던 앤디 머리(35·영국)는 이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러시아 선수들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처우라는 이유에서였다. 세계 랭킹 4위인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36)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들이 러시아 선수들의 참가를 불허한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 불만을 드러낸 근본적 이유는 테니스는 개인 스포츠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윔블던 대회에서는 국가가 연주되지 않을뿐더러 스코어 보드에도 출전 선수들의 국적이 표시되지 않는다. 세계 랭킹에 따라 시드를 배정 받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들을 위한 무대인 셈이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도 지난 6일자 기사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개별 선수들의 경연장인 윔블던 대회와 월드컵 등 국가대항전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다는 게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문제의 핵심이었다. 윔블던 등 주요 테니스 대회는 각각 남자와 여자 테니스 국가 대항전인 데이비스 컵과 빌리 진 킹 컵과 다르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윔블던 대회에 앞서 오는 5월 펼쳐지는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는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 자격을 제한하지 않았다. 개인이 테니스로 승부를 겨루는 대회에 정치적 잣대로 특정 국가 선수들의 참가를 금지하는 게 올바르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더욱이 각각 세계 랭킹 2위와 8위에 올라 있는 러시아의 다닐 메드베데프(26)나 안드리 루블레프(25)가 모두 직간접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는 점도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다. 루블레프는 지난 2월 두바이 챔피언십 준결승이 끝난 뒤 TV 카메라에 "제발 전쟁은 그만둬야 한다(No War Please)"는 평화의 메시지를 글자로 남겼다.

노박 조코비치가 2021 윔블던 테니스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 노박 조코비치가 2021 윔블던 테니스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이 때문에 윔블던 대회의 주최측인 올 잉글랜드 론 테니스 클럽이 러시아 선수들의 대회 출전을 금지시킨 진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 선수들의 윔블던 대회 출전을 통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이익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올 잉글랜드 클럽의 공식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클럽이 러시아 선수 출전 금지 초치를 내린 이유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영국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에 부응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윔블던 대회는 영국의 상징이다. 정부 각료들은 윔블던 대회가 펼쳐지는 경기장 로열 박스를 자주 방문해 왔고 대회의 공식 후원자는 영국 왕세손 윌리엄(40)의 부인인 케이트 미들턴(40)이다.

그래서 영국 내에서는 올 잉글랜드 클럽이 러시아 선수 참가 금지 조치를 통해 이런 귀빈들이 윔블던 테니스 경기를 관전하는 날 러시아 선수가 센터 코트에서 승리를 거두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잉글랜드 클럽은 러시아 선수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조한 벨라루스 선수들의 2022년 윔블던 대회 참가 자격도 박탈했다. 이 조치로 인해 두 국가의 남자 테니스 선수 5명과 여자 테니스 선수 8명이 윔블던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와 여자테니스협회(WTA)는 윔블던 대회의 결정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선수들의 랭킹이 아닌 국가가 참가 기준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주요 테니스 대회에 '오픈'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일정 수준의 경기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라면 모두에게 참가 자격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선수만 참가할 수 있었던 윔블던 대회는 1968년부터 프로 선수들의 대회 참가를 허용하면서 '오픈' 대회의 성격을 갖게 됐다. 하지만 2022년 윔블던 대회는 '오픈' 대회로서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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