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던 여걸 강수연의 쾌유를 기원하며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2022.05.06 10:28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으로 유명한 이 대사는 사실 강수연이 종종 쓰던 표현이었다. 영화감독들이나 배우들과 술자리에서, 늘 술자리를 주도하곤 했던 여걸 강수연이 쓰던 말을 인상 깊게 들었던 류승완 감독이 '베테랑' 시나리오에 녹였다.

'여걸'. 시대착오적인 말일지 모르겠으나 강수연이란 배우이자 사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강수연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다. 여배우는 배우의 하위 카테고리가 아니다. 남배우와 구별 짖는 말이다. 강수연이 그걸 입증했다. 그야말로 한국의 첫 월드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살의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녀는 1980년대를 상징하는 여배우였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등 당대 최고라는 작품들 상당수가 그녀의 출연작이었다. 강수연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7)로 제4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가 메이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건 강수연이 처음이었다. 강수연은 수상은 생각도 못했기에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더 놀라왔던 건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제16회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었다. 당시는 모스크바 영화제가 칸,베니스, 베를린과 더불어 세계 4대 국제영화제로 분류될 때였다. 더욱이 러시아가 소련이었던 시절이었고, 냉전의 막바지였다. 말하자면 한국의 여배우가 적국의 심장에서 최고 상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강수연은 당시를 회고하며 "그 때 만난 유럽영화계 관계자들이 한국이 어디있는지도 잘 모르더라"고 했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콧대 높은 유럽영화 관계자들이 강수연의 연기를 보고 상을 안긴 것이다.

그러니 강수연의 위상이란, 어마어마했다. 강수연 이름 석자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강수연은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절인 1990년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안의 블루'(1993) 등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최고 여배우 수식어를 이어갔다.

1990년대는 강수연에게 인생의 희노애락이 겹치는 시기기도 했다. 주연을 맡은 영화 '장미의 나날'이 흥행에 실패하고, 평단에 혹평을 받았다. 이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지독한 사랑' '깊은 슬픔' 등 후속작들이 호불호가 엇갈리고,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강수연은 1999년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에서 배우들을 대표해 앞장섰다.

배우로서 부침은 SBS 드라마 '여인천하'로 완전히 회복했다. 강수연은 '여인천하'에서 주인공 정난정 역을 맡아 "난정아~"라는 유행어를 낳을 만큼 대중에 큰 사랑을 받았다. '여인천하'로 그해 SBS연기대상에서 전인화와 함께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강수연은 2010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이후 상업영화 활동을 중단했다. '달빛 길어올리기' 이후 허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판',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연출한 단편 '주리' 등에 출연했을 뿐이다. 이후 위기의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연기 보다는 대외적인 활동을 해왔다. 당시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 상영 이후 외압 논란에 휘말렸던 터. 쉽사리 집행위원장을 맡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강수연이 삼고초려 끝에 집행위원장을 맡게 됐다. 비록 소통 부재 등으로 사무국 직원들과 갈등을 빚고 3년만에 물러났지만 이용관 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체제가 성립되기까지 버팀목 역할을 해냈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정이'는 강수연이 10년만에 복귀한 상업영화였다. 지난 1월 크랭크업했다. 200억원 가까이 투입된 SF영화에서 강수연은 주인공을 맡았다. 강수연은 그간 해왔던 배역과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작품이라 고민은 했지만 연상호 감독에 대한 신뢰와 시나리오에 대한 만족으로 '정이' 출연을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강수연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정이' 스태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등 작품과 동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다. 촬영장에서도 여걸 다웠다는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다.

강수연이 지난 5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후송돼 현재 의식이 없는 상태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건강이 안좋다는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워낙 강단이 넘쳤던 그녀인지라 가족과 동료들의 충격이 크다.

부디 건강히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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