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한민족이 세계에서 제일 강해, 졌지만 다시 하면 된다" [한국야구, 길을 묻다]

김우종 기자  |  2021.09.02 08:21
김성근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고문. /사진=뉴스1 김성근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고문. /사진=뉴스1
출범 후 40번째 시즌을 맞은 한국프로야구 KBO리그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에 놓여 있다. 리그의 질적 수준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지적 속에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는 노 메달 수모를 겪었다. 일부 선수들의 일탈도 끊이지 않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팬들의 관심마저 시들고 있다. 스타뉴스는 창간 17주년을 맞아 KBO리그의 산증인들에게 한국 야구가 나아갈 길을 물었다. /스포츠부


[한국야구, 길을 묻다] ① 김성근 ② 김인식 ③ 허구연 ④ 이순철 ⑤ 이승엽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중요하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는 아쉽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야구인' 김성근(79) 전 감독은 한민족의 저력을 믿고 있었다.

김성근 전 감독은 2018년부터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코치 고문으로 합류, 벌써 4시즌째 후쿠오카(소프트뱅크 연고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0년부터는 1군 코칭스태프의 고문을 맡고 있다. 김 고문의 지도력은 이미 일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본 매체 닛칸스포츠는 "소프트뱅크 우승에는 한국서 1300승을 거둔 '명장' 김성근 고문이 있었다. 오 사다하루(81·왕정치) 소프트뱅크 회장도 원한 노장 김 고문의 지혜"라며 치켜세웠다.

김 고문은 최근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한국 야구를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하지만 대략적인 이야기만 접하고 있다"면서 "지금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스포츠가 얼마나 필요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그야말로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런데 최근 한국 프로야구가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어려울수록 언론도 그렇고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자꾸 죽이려고만 든다. 성적이 안 좋고 나쁘다고 해서 죽이면 희망이 사라진다. 어린 아이들이 그걸 보고 야구를 안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도쿄 올림픽서 축구도 4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구도 없어지고, 야구도 없어지면 우리나라 사람들 누가 운동을 하려고 하겠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신화 이후 13년 만에 부활한 올림픽 야구에서 한국 대표팀의 목표는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감도 컸다. 한국 야구는 4위에 머무르며 국민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김 고문은 "정치가 왜 스포츠에 자꾸 개입하는가. 이럴 때일수록 힘을 줘야 한다. 힘을 준다는 건 어떻게 보면 비난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비난은 순간이다. 그러나 힘을 주는 건 새로운 길을 찾아내라고 질타하는 것과 같다. 10년 후에 야구를 할 선수가 없어지면 누가 하겠는가. 또 그 사태는 누가 책임질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김 감독이 바라는 건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는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 언론도 얼마나 도와줬나.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중요하다. 그게 언론의 힘"이라면서 "저를 비롯해 야구인들이 잘못했다. 본인들도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둘씩 없애버리면 앞으로 누가 야구를 하겠는가.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게 어른들이 할 일이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얼마나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나. 그래도 극복한 게 한민족 아닌가. 한국 사람들은 위기에 강하다. 6.25 전쟁도 극복하고 세계에서 제일 강한 민족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었고 그러면서 하나가 돼 있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김성근 소프트뱅크 고문. /사진=OSEN 김성근 소프트뱅크 고문. /사진=OSEN
김 고문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스포츠는 세상에 힘을 주는 거다. 그런데 그 힘을 줬던 스포츠가 국민들에게 상처를 줬다. 그러면 이제 '너희들 힘내라, 정신 차리고 하자'라면서 다시 스포츠가 힘을 줄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이 어려운 시국에 국민들이 잘 참아내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어디서 활력을 찾겠는가"라면서 "지나간 일보다 과거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어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갈 길을 하나라도 만들어주고 안내하는 게 어른들이 할 일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고문은 최근 동료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본프로야구의 나카타 쇼(32)를 언급했다. 닛폰햄 소속이었던 나카타는 지난 달 4일 연습경기를 앞두고 더그아웃서 후배를 폭행해 도마에 올랐다. 그런데 '명문 구단' 요미우리가 닛폰햄과 합의 끝에 나카타를 영입했다. 분명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김 고문은 "요미우리가 나카타를 영입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사회적으로는 큰 비난을 받았겠지만, 어쨌든 야구계는 그를 살리기 위해 데려갔다. 만약 앞으로 나카타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사회에 희망을 주는 일이 아닌가. 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그 선수는 아마 이미 좌절했을 것이다. 그래도 일본 언론에서는 요미우리가 나카타를 영입한 것에 대해 거의 비난을 하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끝으로 김 고문은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도 살아온 민족이다. 그 희망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다들 살아왔다. 지금 시국이 그때보다 힘이 드는가"라고 되물은 뒤 "내가 야구를 배우는 어린 학생들한테 가서 '야구가 재미없다, 희망이 없다'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희망을 줘야 한다. 우리는 이번에 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하나 다시 올려놓아야 한다. 일본 야구 역시 동메달도 못 딸 때가 있었다(2000 시드니, 2008 베이징올림픽 4위). 그런데 20여 년이 걸려서 이렇게 올라왔다(도쿄올림픽 금메달). 우리나라도 다시 하면 된다. 지나간 순간은 이미 과거다. 사람은 과거 속에 살면 안 된다"라고 말을 맺었다.

김성근 고문. /사진=스타뉴스 김성근 고문. /사진=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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