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136명' 日 NHK도 주목한 교토국제고의 기적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1.08.25 19:45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한국어 교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일본 MBS 센바쓰LIVE 보도 장면 캡처.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한국어 교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일본 MBS 센바쓰LIVE 보도 장면 캡처.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지난 24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103회 여름철 고시엔 대회에서 니쇼가쿠샤대학부속고를 연장 10회 끝에 6-4로 제압하고 준준결승에 올랐다.


고시엔 대회 8강 진출은 일본 내 외국계 학교로는 최초 사례여서 한국은 물론 일본 언론에서도 이 소식이 크게 보도됐다.

무엇보다 교토국제고의 8강 진출은 일장기와 함께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여름철 고시엔 대회 주최사 아사히(朝日) 신문의 깃발이 펄럭이는 고시엔 경기장에서 이룬 성과라 한국인들에겐 더 의미가 깊었다. 물론 고시엔 경기 승리 팀의 특권인 교가 연주와 제창을 통해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교토국제고의 역사는 1947년 재일조선인 단체가 설립한 교토조선중에서 시작됐다. 당시 재일조선인들은 선거권을 잃고 외국인으로 차별적 관리대상이 됐지만 자손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기 위해 민간 창고를 빌리거나 조선인이 소유한 건물을 개조해 학교를 설립했다.

교토조선중은 1958년 교토한국학원으로 변신했지만 일본에서 정식 학교로 대접받지 못했다. 이후 2003년에 이르러서야 일본학교교육법 제1조의 인가를 받아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정식 학교가 됐고 이름도 지금의 교토국제고로 바뀌었다.

1999년 야구부를 창설한 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대회 본선에 진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교토국제고는 전교생 숫자가 136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로 외야도 없는 열악한 학교 야구장에서 연습했던 무명의 야구 팀에 불과했다.

일본 언론이 교토국제고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NHK도 24일 올 해 여름철 고시엔 대회 예선에 참가한 고교야구 팀이 3603개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토국제고의 8강 진출을 기적에 가까운 일로 평가했다.

교토국제고의 8강 진출은 올해 3월에 펼쳐진 봄철 고시엔 대회(센바츠) 16강전 패배가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 교토국제고는 16강전에서 9회에 3점을 내주며 뼈아픈 역전패를 기록했다.

이후 교토국제고의 2년생 왼손 에이스 투수인 모리시타 류다이는 더욱 적극적인 몸쪽 직구 승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 실제로 모리시타는 24일 16강전에서 어려운 순간마다 도망가지 않고 과감한 몸쪽 직구 승부를 펼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다른 선수들도 여름철 고시엔 대회를 준비하면서 "봄철 고시엔의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교토국제고의 기적을 일군 고마키 감독은 교토의 야구 명문 교토 세이쇼 고교 출신이다. 그는 1999년 막 야구부를 창단한 교토국제고와의 지역예선 경기에서 세이쇼 고교의 34-0 대승을 이끈 주인공이었다.

고마키 감독은 2006년부터 교토국제고 야구부에서 어시스턴트 코치 역할을 하게 됐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주말에만 타격과 수비를 지도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2년 뒤에는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미 2004년 정식 학교로 인가 받아 일본인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됐지만 교토국제고가 일본인 야구부원을 모집하는 일은 한국계 민족학교라는 편견 때문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고마키 감독의 지도 방식이 알려지면서 지역 유망주들이 교토국제고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재 최고 시속 143km의 모리시타를 비롯한 선수들이 교토국제고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교토국제고는 26일 오전 8시 후쿠이현 대표로 대회에 출전한 쓰루가 케히 고교와 8강전을 치른다. 이 경기의 관건은 모리시타의 피로도이다. 모리시타는 16강전에서 142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했고 19일 경기에서도 130구를 투구하며 완봉승을 거뒀다.

"봄철 고시엔의 빚을 여름철 고시엔으로 갚는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는 교토국제고의 드라마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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