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 '남녀 평등 스포츠'의 가치를 더욱 빛내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1.08.02 16:32
도쿄올림픽 남녀 혼성 단체전에 출전한 김제덕(왼쪽)과 안산.  /사진=뉴스1 도쿄올림픽 남녀 혼성 단체전에 출전한 김제덕(왼쪽)과 안산. /사진=뉴스1
한국이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종목은 단연 양궁이다. 1984년 LA 올림픽부터 2020 도쿄 올림픽까지 획득한 금메달 숫자만 봐도 무려 27개다.


한국은 이번 도쿄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도 4개의 금메달을 땄다. 이 가운데 안산(20)은 역대 한국 하계 올림픽 단일대회 최초로 3관왕에 오르는 위업을 이뤘고 김제덕(17)은 2관왕에 올랐다.

세계 최강 한국 올림픽 양궁의 전설은 1984년 LA 올림픽 서향순의 금메달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김수녕이 2관왕에서 오르면서 양궁은 올림픽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종목이 됐다.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이룬 성과가 더욱 위대한 점은 남자와 여자 선수가 모두 세계 최강의 실력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도쿄 올림픽에 신설된 양궁 남녀 혼성 단체전에서 김제덕과 안산이 호흡을 맞춘 한국이 금메달을 따면서 다시 한 번 입증됐다.

실제로 양궁은 근대 올림픽 초기부터 남자와 여자 선수가 동등하게 참여를 할 수 있는 '양성 평등'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스포츠였다. 1900년 파리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양궁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가 출전할 수 있는 유일한 올림픽 종목이 됐다.

여자 양궁대표팀 안산(왼쪽부터)과 장민희, 강채영이 도쿄올림픽 여자단체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미소 짓고 있다. /사진=뉴스1 여자 양궁대표팀 안산(왼쪽부터)과 장민희, 강채영이 도쿄올림픽 여자단체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미소 짓고 있다. /사진=뉴스1
양궁이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들에게 일찍부터 문호를 개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궁을 즐기는 여성들의 문화가 산업혁명 시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됐기 때문이었다.

점잖고 고상한 취미생활을 즐겼던 영국 귀족 여성들은 18세기부터 신체의 움직임이 크지 않아 그들의 우아한 패션 코드를 과시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던 양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자 양궁 클럽이 창설됐고 대규모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여자 선수들을 위한 대회가 자주 열릴 정도로 여자 양궁은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여성이 참여할 수 있던 올림픽 종목 양궁은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 때까지 양궁의 규칙은 올림픽 개최국에서 임의로 정해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고 세계 양궁계를 대표할 수 있는 국제 양궁 기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궁 규칙의 일원화와 전 세계적 보급을 위해 1931년 창설된 국제양궁연맹은 양궁의 올림픽 정식종목 재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궁이 다시 올림픽 종목이 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의 김제덕(왼쪽부터)-김우진-오진혁이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건 채 인사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의 김제덕(왼쪽부터)-김우진-오진혁이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건 채 인사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마침내 양궁은 1972년 뮌헨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여기에는 당시 세계양궁연맹 잉거 프리스 회장의 역할이 컸다. 양궁 선수 출신인 프리스 회장은 국제 스포츠 단체 최초의 여성 회장이었다. 그녀는 오랜 기간 남자와 여자 선수들이 평등하게 참여했던 양궁의 가치가 올림픽에서도 구현되기를 원했고 뮌헨 올림픽부터 남녀 개인전이 각각 펼쳐질 수 있었다.

이후 양궁은 남녀 평등의 상징적 스포츠로 발전해 왔다. 양궁 월드컵 입상 선수의 상금은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이 지급됐으며 올림픽에서도 남자와 여자 참가자가 각각 64명으로 동일하고 남녀 선수가 똑같이 70m 거리에서 경기를 펼친다.

19세기부터 대중 스포츠로 발돋움한 양궁의 역사는 스포츠 양성 평등의 역사이기도 했다. 자신과 동료들의 도전을 응원했던 김제덕의 포효와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지킨 안산이 보여준 한국 양궁의 남녀 합작 드라마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