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축구 변방은 없다' 유로2020이 증명한 상향 평준화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1.07.02 14:34
우크라이나의 아르템 도비크(왼쪽)가 6월 30일(한국시간) 스웨덴전에서 골을 넣은 뒤 웃옷을 벗고 있다.  /AFPBBNews=뉴스1 우크라이나의 아르템 도비크(왼쪽)가 6월 30일(한국시간) 스웨덴전에서 골을 넣은 뒤 웃옷을 벗고 있다. /AFPBBNews=뉴스1
유로 2020 대회의 8강 진출 국가 중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잉글랜드 등 전통의 축구 강호도 있지만 축구 '변방 국가'도 존재한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우크라이나, 스위스, 체코, 덴마크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 시절부터 유럽 명문 클럽이었던 디나모 키에프의 영향력이 크다. 우크라이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안드레이 쉐브첸코의 전설이 시작된 곳도 디나모 키에프였다. 현재 대표팀 명단에서도 디나모 키에프 소속 선수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8강까지 견인한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해외 리그에서 뛰고 있다. 대표적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올렉산더 진첸코(맨체스터 시티), 안드리 야르몰렌코(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등이 거론된다.

체코도 이번 대회 참가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국내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숫자가 많은 편이다. 주로 스파르타 프라하와 슬라비아 프라하 소속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해외파 선수들인 파트릭 쉬크(바이엘 레버쿠젠), 토마스 수첵(웨스트햄 유나이티드)등의 활약이 8강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 동유럽 공산국가 체제가 붕괴되기 이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 수준은 높았다. 체코는 1976년 유로 대회에서 서독을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 유명한 파넨카 킥이 나온 것도 서독과의 결승전 승부차기였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선수들은 모두 자국리그 소속이었다. 하지만 1996년 체코(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독립)가 유로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이미 체코의 주력 선수들은 유럽 빅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파벨 스르니첵(뉴카슬 유나이티드), 파트릭 베르거(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그 핵심 선수였다.

해외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체코가 1996년 유로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킨 뒤 유럽 축구계는 이미 1년 전 제정된 이른바 '보스만법'이 향후 유럽 축구를 더욱 평준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EU(유럽연합) 소속 국가 출신의 선수가 EU 내 다른 국가 축구 클럽으로 이적할 때 내국인으로 대접받게 되면서 동유럽이나 유럽 축구 약소국 선수들도 빅 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었다.

보스만법이 만든 유럽 축구 평준화는 유로 2004의 그리스 우승으로 정점에 올랐다.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그리스의 우승은 보스만법의 영향력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럽 주요 리그에서 활약하는 그리스 선수들의 경험과 자신감이 대표팀을 지휘한 독일 출신 오토 레하겔 감독의 스리백 전술과 잘 어우러진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당시 그리스 니콜리디스 골키퍼는 "최근 체코, 그리스, 덴마크 같은 팀의 꽤 많은 선수들은 유럽 명문 클럽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이제 아무도 잉글랜드, 이탈리아 같은 팀과 경기할 때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며 보스만법 이후 달라진 유럽 축구 지형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아스널의 전성시대를 지휘했던 아르센 벵거 감독도 유로 2004 대회 직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 리그의 명문 클럽들은 유럽축구 소국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한다. 이것이 국제대회에서 '빅5'로 불리는 전통 강호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건 아이러니다"라고 보스만법의 파생효과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덴마크 선수들이 지난 6월 27일(한국시간) 웨일스에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덴마크 선수들이 지난 6월 27일(한국시간) 웨일스에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유로 2020에서 예상을 뒤엎고 8강에 오른 덴마크와 스위스도 모두 보스만법의 수혜자다. 덴마크는 팀의 에이스 크리스티안 에릭센(인터밀란)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유럽 빅 리그에서 활약 중인 다른 선수들이 대활약을 해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수비의 핵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첼시)와 유수프 풀센(RB 라이프치히), 마르틴 브레스웨이트(바르셀로나)와 함께 역시 유럽 주요리그에서 활약 중인 카스퍼 돌베르(니스)와 호아킴 매흘레(아탈란타), 미켈 담스고르(삼푸도리아)가 돌풍을 이끌었다.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로 유연한 이민자 정책을 추구했던 덴마크의 또 다른 특징은 이민자 세대의 역할이다. 탄자니아 혈통의 유수프 풀센과 가이아나 혈통의 마르틴 브레스웨이트는 현재 덴마크 대표팀에는 반드시 필요한 선수들이다.

스위스는 이른바 '세콘도'로 불리는 이민자 세대들의 역할이 덴마크 이상으로 중요한 팀이다. 셰르단 샤키리(리버풀), 해리스 세페로비치(벤피카), 리카르도 로드리게스(토리노)와 알바니아 혈통을 이어받은 팀의 주장 그라니트 샤카(아스널) 등 이민자 세대가 즐비하다.

지난 유로 2016 대회부터 본선 참가국 숫자가 24개국으로 늘어나자 적지 않은 축구 전문가들은 참가국의 전력 차와 이에 따른 경기 수준의 하락을 우려했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오히려 보스만법과 이민자 세대의 역할 증대로 유로 대회 참가국의 상향 평준화는 지속적으로 발현되고 있다. 체코, 덴마크, 스위스, 우크라이나의 유로 2020 8강 진출이 갖는 중요한 의미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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