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가항력 분만 사고의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 의사·간호사가 충분한 주의·예방 의무를 다했음에도 발생하는 신생아 뇌성마비나 산모·신생아 사망 등에 보상 한도를 최대 3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할 계획이다. 재원은 기존에 정부와 분만의료기관이 7대 3으로 분담한대서 정부 100% 부담으로 전환한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외에 최선을 다한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종합보험 가입 추진과 비용 일부 지원으로 '사법 리스크'를 완화할 방침이다.
언뜻 보면 '산부인과 살리기'에 긍정적일 것 같다. 하지만 현장의 평가는 싸늘하다. 지난 12일 보건복지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 등이 주재한 업무 협의에서도 '엉터리 제도'라며 실효성에 대한 의료계의 성토가 쏟아졌다. 관련 논의에 참여하는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에게 의료사고에 대한 정부 대책의 실익을 들었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방안을 평가한다면
▶정부 정책은 불가항력 의료사고는 100% 보장하고, 이외 의료과실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보험 가입 시 필수의료에 한 해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중재원의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한도는 최대 10배 오른다.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몰락하는 산부인과를 회생시키기 어렵다.
-이유는.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모성 사망자 수는 21명이다. 연간 출생아 중 0세 사망자 비율을 의미하는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3~2.5명으로 지난해 23만23명이 태어났으니 500~600명이 사망한다고 볼 수 있다. 중재원은 2013년부터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 보상을 진행했는데 2021년 5월까지 산모 사망(31건), 신생아 사망(44건), 태아사망(13건), 뇌성마비(14건) 등 102건이 인용됐다. 실제 사망자 등과 보상자 간 차이가 크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어떻게 해석하나.
▶중재원 보상 청구를 하지 않은 나머지 사고는 산모 등이 의료기관에 문제로 삼지 않거나, 합의했거나, 법적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걱정되는 부분은 첫째, 이번에 오른 보상액이 '기준'이 되면 아마도 적지 않은 수가 분쟁 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의료기관과 환자 간 합의금도 전보다 오를 것이 자명하다. 보상액이 최대 3억원인데 5천만~1억원에 선뜻 합의를 볼 수 있을까. 운영난에 신음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지급할 수준을 넘을 수도 있다. 합의 대신, 혹은 보상을 위해 중재원에 수요가 몰리면 정부의 재정 부담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예산 부족에 따른 문제점은.
-불가항력 의료사고가 아닌 의료과실이라며 의료기관에 책임을 더 물을 수 있다. 합의금은 물론 보험료도 오를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필수 의료와 분만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의 전문의, 전공의에게 보험료의 50% 지원을 발표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이를 30%로 삭감했다. 저수가와 초저출산으로 분만 병원의 폐업 사례가 속출한다. 이런 상황에 종합보험 가입으로 비용 부담이 더해지면 특히 인원이 많은 병원일수록 경영난이 악화할 것이다. 분만 의료사고와 관련한 민사소송은 억대 배상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5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뇌성마비 신생아의 분만을 담당한 산과 의사에게 12억원의 배상 판결을 하기도 했다. 최저 임금 인상과 평균 수명 증가로 배상 비용이 갈수록 커진다.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다.
-개선 방안이 있다면.
▶영국, 독일 등은 분만 사고에 과실 유무를 판단하지 않고 국가가 보상금을 선지급한다. 처음부터 과실을 따지는 과정에 드는 변호사 선임비, 의사의 수고 등 '갈등 비용'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산모 사망 시 수입과 기저질환 등을 고려해 보상액에 차이를 둔다. 명백한 의료과실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해당 의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 뇌성마비 시 얼마의 보상금을 선지급하고, 이것을 환자나 가족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 소송을 제기하는 식이면 산부인과의 법적 부담도 상당히 경감될 것이다. 영국의 경우 환자 등이 선보상에 불복해 소송을 건 사례는 10년간 5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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