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아내도 긴장해서인지 4번이나 깨더라고요. 늦둥이 아들이 오늘 시험을 쳐요."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날인 14일 오전 7시30분 서울 강남구 봉은사. 한 중년 여성이 대웅전 앞에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늦둥이 아들에 대한 걱정과 부모로서 느끼는 초조함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그런 아내를 지켜보는 남편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는 "아들이 경기고에서 시험을 친다"며 "봉은사가 경기고와 가까워 기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시험이 끝나면 아들을 데리러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14일 이른 아침부터 주요 사찰과 교회에 수능 수험생의 선전을 기원하는 가족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종교는 달라도 자녀, 손자를 위한 간절한 마음은 모두 같았다.
이날 봉은사 입구에 '2025학년도 학업 원만 성취 기도'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대웅전 앞은 쌀과 촛불을 든 수험생 가족들로 북적였다. 쌀과 초는 불교에서 부처에게 올리는 6대 공양물에 속한다.
불이 켜진 초가 들어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는 수험생의 이름과 함께 '대학합격 발원, 심신 안정, 소원 성취' '수능 고득점, 대학 합격' 등 응원 문구가 담겼다.
1교시 국어 시험이 시작되기 10분 전인 오전 8시30분이 되자 봉은사 법왕루에서 한 스님이 목탁을 치며 예불을 시작했다. 법당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찼다. 신발장은 물론 바닥에도 신발을 놓일 데가 없었다.
재수하는 조카를 위해 봉은사에 왔다는 한 중년 여성은 "동생이 조카를 데려다주고 출근을 해서 내가 대신 기도하러 왔다"며 "잘하는 아이인데 지난해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시험 당일 장이 꼬여 실력 발휘를 못 했다. 오늘 온가족이 각자의 방식으로 조카를 위해 기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도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가 진행됐다. 정모씨(73)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능을 치는 외손주를 위해 교회를 찾았다.
정씨는 "외손주가 독학으로 재수를 했는데 1년간 거실에서 잠을 자고 아침 6시면 칼같이 독서실로 만든 자기 방에 들어가 공부했다"며 "딸·아들이 대학 갈 때도 직접 교회에 오지 않았는데 손주는 오게 되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선만 다하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안 되면 또 다시 도전하면 되니 외손주에게 '잘하고 있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모씨(47)은 여의도고에서 수능을 치르는 외동아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직접 도시락을 쌌다. 아들이 부탁한 대로 계란말이와 떡갈비, 스팸을 굽고 소고기 뭇국까지 준비했다.
그는 "아침에 수험장까지 바래다주고 왔는데 너무 떨렸다"며 "아이도 긴장하고 있으니 저는 최대한 티를 안 내려 했다. 부담 갖지 말고 지금까지 공부한 대로 실수하지 말고 잘 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곳에서도 1교시 국어 시험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본격적인 기도가 시작됐다. 가슴에 손을 대고 기도하거나 기도 중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보였다. 일부 신자는 수험생 자녀를 데려다주고 뒤늦게 도착해 기도에 몰입했다.
70대 김모씨는 "오늘 오전 3시30분에 금천구에 있는 집에서 나와서 새벽 기도하고 다시 수능 기도회에 와 손녀를 위해 종일 기도할 예정"이라며 "혹여나 이런저런 말이 부담될까 묵묵히 기도로 지원하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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