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인 14일. 오전 7시40분쯤 서울 서초구 지하철 방배역 2번출구 앞에 창백한 얼굴의 최모양이 나타났다. 고3 수험생인 최양은 유독 집에서 먼 수험장으로 배정됐다. 수험생들은 수험장 정문을 오전 8시10분까지 통과해야 하는데 최양은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까지는 10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 때 안유미 서초구 방배1동 주민센터 주무관이 최양에게 다가가 "저희 차량에 탑승하라"고 말을 건넸다. 최양은 "꼭 합격하고 싶다"며 수험생 수송차량 안에서도 문제집을 펼쳤다.
지자체와 자율방범대 등 봉사자들이 수능 당일 '수험생 수속 작전'을 펼쳤다. 모범운전자회 소속 택시와 주민센터 관용차량, 봉사자들의 자가용 차량이 동원됐다.
입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수험생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입실 마감 7분 전인 오전8시3분. 한 남학생이 서울 지하철 온수역 8번 출구 계단을 뛰어 내려오며 "우신고요. 우신고"라고 외쳤다.
대기 중이던 구로구청 공무원들과 지역 봉사단체 회원들은 남학생을 낚아채듯 이끌고 수송차량에 태웠다. 학생은 "진짜 감사하다"며 숨을 헐떡였다.
오전 7시40분쯤 한 여학생이 발을 구르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서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3번 출구 앞에 타나났다. 학생은 신길동 대영고에 배정돼 7호선 신풍역에서 내려야 했지만 잘못 내렸다.
지역에서 오래 거주한 봉사자들이 여학생을 달랬다. 김성규 서울시자동차전문정비사조합 영등포구지회장은 "대영고는 신길동 유명한 설렁탕집 바로 뒤에 있다"며 "금방 간다. 괜찮다"고 했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도 직접 수송차량 문을 열어주며 "힘내라"며 응원했다.
자동차전문정비사조합원 영등포구지회와 문래동 자율방범대 회원 등 20여명은 영등포구청 공무원들과 함께 이날 오전 6시부터 문래역 3번출구에 나왔다. 지역 지리를 잘 아는 이들은 수험생이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면 바로 '어디로 향하냐'고 묻고는 차에 태웠다.
이날 문래역 3번 출구에서만 수험생 6명이 도움을 받았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영등포 수험생들이 모두 준비한 만큼 좋은 성과 있도록 응원해 주러 나왔다"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한명까지 수험장에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돕겠다"고 했다.
구로구 지하철 온수역에서도 인근 우신고와 오류고 등에 가는 수험생 이동을 돕기 위해 구로구청과 지역 봉사 단체 등 30명이 새벽부터 나왔다.
경인고에 다니는 권모군은 "차량을 지원해주니 훨씬 편하다"며 "준비한 만큼 잘하고 오겠다"고 했다. 한 남학생 아버지는 아들과 같이 수송차량에 타고 수험장으로 향했다.
우신고로 향하는 수험생수송차량을 탄 구로고 3학년 김모군은 "너무 감사하다"며 "엄청 떨려서 주스 한 잔만 마시고 나왔다"고 했다.
수험생이 탄 차량이 먼저 이동할 수 있게 버스와 승용차들은 길을 터주기도 했다.
새벽부터 나온 봉사자들은 매년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온수역에 봉사를 나온 장모씨는 "재작년에 한 수험생이 8시쯤 온수역에 도착했는데 학교를 잘못 찾아온 학생이었다"며 "마침 수송차도 없을 때라 경찰에도 연락하고 중국집 오토바이까지 되는대로 잔뜩 불러 태웠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다 떨리더라. 수험장 잘 들어갔다는 소신을 전해듣고 보람을 느꼈다"며 "그게 봉사의 맛"이라고 했다.
방배모범운전자회 소속 택시기사 박인석씨(72)는 "5~6년 전 수능날 엄마와 딸이 발을 동동 구르며 찾아온 적이 있다"며 "어쩔 수 없이 꼬리잡기하며 급히 갔는데 입실시간 3분 전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번호를 알려줬더니 나중에 감사하다고 인사가 와 마음이 따뜻했다"고 했다.
김성규 서울시자동차전문정비사조합 영등포구지회장은 "한 20년 수험생 수송 봉사 했는데 급하게 도착한 수험생들은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며 "나중에 대학 합격했다고 고맙다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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