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소송도 기본적으로 변론주의를 따르고 그 절차엔 민사소송법이 준용되므로 증명책임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다만 조세소송 당사자는 납세자와 과세관청이 된다. 과세관청은 과세처분을 하기 위한 세무조사권한을 갖는 등 납세자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기 때문에 과세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과세처분의 적법성에 관한 증명책임은 과세관청에게 있다.
다만 납세자가 제소기간이 지나는 문제 등으로 과세처분 무효확인 소를 제기하는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대법원은 과세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과세처분에 명백한 잘못이 있어 당연무효를 주장할 때 납세자에게 증명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세금 부과 처분의 무효 여부를 다투는 소송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1994년 원고가 운영하던 사업체의 수입이 누구에게 속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원고의 소득으로 간주해 종합소득세를 부과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관련 법 조항(개정 전 법인세법 제32조 제5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원고는 이 세금 부과 처분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해당 수입이 실제로 원고에게 귀속됐다고 주장하며 처분 사유를 변경했다.
원심은 원고에게 증명책임이 있다고 보고, 원고가 그 수입이 실제로 자신에게 속하지 않았음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판결을 선고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과세처분에 대한 취소소송과 무효확인소송은 모두 소송물이 객관적인 조세채무의 존부확인으로 동일하다"며 "결국 과세처분의 위법을 다투는 조세행정소송의 형식이 취소소송인지 아니면 무효확인소송인지에 따라 증명책임이 달리 분배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위법사유로 취소사유와 무효사유 중 무엇을 주장하는지 또는 무효사유의 주장에 취소사유를 주장하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증명책임이 분배된다"고 봤다. 또 "원고가 당초의 처분사유를 전제로 하여 위헌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법률을 근거로 한 이 사건 처분의 무효사유를 주장·증명한 이상, 변경된 처분사유를 전제로 한 이 사건 처분의 적법성은 피고가 증명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과세처분 무효확인 소송에 있어 무효사유에 대한 증명책임은 납세자에게 있다는 종전의 입장을 유지했다. 다만 소송의 형식보다도 실제 주장 내용에 따라 증명 책임을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법령의 효력이 사라졌음을 입증했다면, 이후에는 피고가 "수입이 실제로 원고에게 속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납세자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환영할 만하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