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의 탄핵 이후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는 전공의·의대생과 '오래된 세력'인 개원의·교수 간 파열음이 감지된다. 탄핵의 실마리를 제공한 전공의에 임 전 회장이 곧장 '반격'에 나서며 의사 간 내홍이 한동안 이어질 조짐이다. 의정 갈등 해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의협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당한 임 전 회장은 자숙의 의미로 자진 폐쇄한 SNS(소셜미디어)를 전날부터 재개했다. 첫 번째로 올린 글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내용이다. 임 전 회장은 "의협 비대위원장과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비꼬았다. 이어 "분명한 건 본인이 누누이 얘기해왔던 '2025년 의대정원 원점 재검토'까지 분명히 달성해야 할 것"이라며 박 위원장을 압박했다.
임 회장이 취임 6개월 여만에 '초고속 탄핵' 당한 배경으로 전공의와의 갈등이 지목된다. '전공의 대표'인 박 위원장은 임 회장이 추진한 범의료계 협의체(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비롯해 의협의 대정부 협상 활동을 모두 비판하며 불참했다. 임 회장이 막말을 일삼아 의사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전공의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간호법 통과, 의대증원 저지 실패 등 의료현안에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한 점도 꾸준히 지적했다.
의료사태 해결의 열쇠를 전공의가 쥔 상황에서 '불통 이미지'가 박힌 임 회장은 입지가 점점 좁아졌다. 특히, 탄핵을 사흘 앞두고 대전협이 박 위원장을 포함해 각 병원 대표 90명의 명의로 "임 회장을 탄핵하라"고 발표한 것은 그야말로 직격탄이었다. 임 회장의 지지기반인 개원의를 중심으로 "탄핵해도 대안이 없다", "내가 뽑은 회장을 대의원 몇백명이 끌어내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등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거세진 탄핵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 실제 탄핵이 이뤄지자 역으로 임 회장의 편에 섰던 선배 의사들이 '관망 모드'로 전공의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향후 의협은 비대위를 구성하고 전공의 중심의 대정부 협상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대표인 박단 위원장은 사실상 의협의 실세로 부상했다. 의협이 차기 회장 선거를 조기에 여는 대신 비대위 체제를 결정한 것도 박 위원장이 총회에서 이를 공개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진다. 박 위원장은 전날 의협 비대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4명 중 박형욱 대한의사회 부회장을 공개 지지했는데, 이를 두고 "선거마저 흔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대의원회 의장단이 경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일부 의사는 그간 '책임 없는 권한'만 행사한 박 위원장 등 전공의가 전면에 나서게 된 만큼 정치력, 협상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다. 임 회장을 지지한 개원의를 비롯해 "착취 사슬의 중간 관리자", "정체성을 포기하고 간호사에게 본인의 업무를 떠넘긴 의사는 누구입니까"라며 비판받은 의대 교수, 사직했지만 '온건파'인 전공의 일부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임 전 회장이 "그동안 박단과 그를 배후 조종해왔던 자들이 무슨 일들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한테 상세히 밝히겠다"며 SNS를 통한 추가 폭로를 예고하고 있어 내부 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의사 세대, 직역 간 갈등은 향후 의정 협상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 현직 의대 교수는 "의협은 개원의 중심의 단체다. 전공의가 주도하는 의협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회비나 후원도 확 줄어들 것"이라며 "회원들이 납득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거나 혼란을 조기에 잠재우지 못한다면 역으로 '전공의 중심' 의협이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