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만난 수도권 반도체 공장 관계자는 무엇이 반도체 업계에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최근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이 대폭 늘고 있으나, 대부분 간접 방식에 치우쳐 있어 투자를 돕는 실제 효과는 크지 않다는 의미다.
직접보조금은 반도체 업계의 오랜 숙원이다. 영업익을 계산해 사후 지급받는 세액 공제나 상환 부담이 있는 대출 지원과 다르게 자금이 곧바로 투입되기 때문에, 신속한 연구개발을 유도할 수 있다. 미국이나 대만 등 반도체 선진국은 물론, 후발 주자인 중국이 SMIC 등 기업에 매년 조 단위의 직접 보조금을 쏟아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보조금에 인색하다. 대한상의가 최근 10년간 상위 5개 유형의 제조업 보조금을 분석한 결과, 대출 등 간접지원액은 100조원이 넘었으나 직접보조금은 0원이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짓고 있는 공장은 최대 수조원의 직접보조금을 받지만, 수십조원을 쏟아붓는 용인 클러스터에 대한 직접보조금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반도체 산업은 투자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쟁자보다 첨단 기술을 먼저 확보하고, 점유율을 높여 수익으로 재투자하는 선순환구조가 구축돼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직접보조금은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 주고 당장의 투자 여력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중견 반도체 기업에게도 투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글로벌 입지가 위태로운 지금 기업의 통장을 채워주는 것이 절실하다. 파운드리·모바일 AP 등 잘 하던 분야에서 선두와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아래에서는 중국이 저가 시장을 쓸어담으며 점유율을 키운다. 주요국들은 막대한 액수의 직접보조금을 통해 우리 기업들을 끌어가려 혈안이 되어 있다.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과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과거의 방식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지난달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의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반도체를 주도하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첨단 반도체 기술과 인재를 기르는 투자를 위해서는 우리 기업의 통장이 먼저 두둑해져야 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