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가 오후 늦은 시간, 급하게 이기흥 회장에 대한 직무 정지에 나선 이유는 이날 국회에서 관련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선 내년 예산안 관련 질의와 함께 대한체육회에 관한 현안질의가 있었다.
그런데 현안질의 대상인 대한체육회의 수장인 이기흥 회장은 스위스 로잔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문체위 종합국감도 이 회장은 전북 남원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한 바 있다. 이 회장이 두번 연속 내외 출장을 핑계로 문체위의 소환에 응하지 않자, 이날 회의에서 여야 문체위원들은 이 회장에 대한 성토에 나섰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국무조정실 조사 결과를 보면 기가 막힌 일들이 많다. 이기흥 회장 딸 친구 채용 강요를 위해 자격 요건까지 바꿨다. 심지어 학력, 연령 제한도 없이 풀어놓고 딸 친구를 채용시켰다며 "그 과정에서 반대했던 임직원은 강등하고 좌천시키는 폭거를 자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의원은 "본인 지인이나 친분 관계 있는 인사에 대해선 기부 금품을 요청하고 그 대가로 체육회 요직을 제공했다"며 유인촌 문체부 장관에게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2조의 3에 따르면 주무기관의 장은 공공기관 임원이 비위행위를 한 사실이 있거나 혐의가 있는 경우에 직무를 정지시키도록 돼 있다. 이 회장 등에 대한 직무정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유 장관도 김 의원 의견에 동의하며 "국무조정실 점검단과 스포츠윤리센터의 수사의뢰 관련 조사 점검 결과를 아직 공식적으로 받아보지 못했다. 결과가 나오면 저희에게 징계 요구를 할 텐데, 문체부가 대한체육회장을 직무 정지시킬 수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이 되면 회장은 직무 정지를 할 것이고 나머지 임직원에 대해선 체육회가 징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김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이 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가능성을 오후 3시경 언급한 뒤, 오후 6시 반쯤 문체위가 산회되자 국무조정실과 스포츠윤리센터의 이 회장 관련 수사의뢰 내용을 검토한 뒤 즉각적으로 직무정지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회 문체위에 불출석한 이 회장은 지난달 29일,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에 내년 1월 예정된 차기 체육회장 선거를 위한 자신의 신청 서류를 제출하고 곧바로,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 참석을 이유로 당일 출국한 바 있다.
이후 이번달 2일 귀국했으나 다시 4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자문위원회를 다녀왔고 11일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세계올림픽개최도시연합(WUOC) 서밋 참가를 이유로 다시 해외 출장을 나간 상태다. WUOC는 올림픽 개최도시와 개최희망도시의 대표자들이 참석하는 행사로 대한체육회 대표자인 이 회장이 참석해야할 이유도 없다. 서울이나 평창 등 올림픽 개최도시 관계자가 참석해야할 회의다.
실제로 체육회는 이 회의에 지난해 대리급 직원이 참석한 적이 있을 뿐 체육회장이 직접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체육계와 국회에선 이 회장이 11일 열릴 체육회 현안질의에 참석하지 않기위해 급하게 해외출장 일정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이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회장은 체육회 예산이 아닌, 본인의 사비를 들여 스위스 출장을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육회 예산으로 천만원이 넘는 스위스 출장비용을 처리할 경우, 지적을 당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12일 오후 2시 올림픽회관 본관 13층 대회의실에선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이 회장의 연임 승인 안건 등이 처리될 예정이다. 3연임 도전을 위해선 이 회장에 대한 연임 제한 예외가 스포츠공정위에 의해 의결돼야 한다. 지난 4일, 전체회의에 앞서 열리는 소위원회에선 만장일치로 이 회장의 연임 허용이 통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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