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 2’, 전형적이지만 젊고 강렬해진 액션 시대극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4.11.11 23:00

뻔한 영웅서사를 힘있게 조절하는 노장 리들리 스콧의 내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1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오랜 과업이자 영화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글래디에이터’ 속편이 24년 만에 극장가를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2021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2022년 ‘하우스 오브 구찌’, 2023년 ‘나폴레옹’ 그리고 ‘글래디에이터’ 속편까지 4년째 연이어 대작을 내놓는 80대 거장의 열정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표작 ‘글래디에이터’는 2000년에 개봉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액션 블록버스터 시대극이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로마 장군에서 하루아침에 노예 검투사가 된 막시무스의 복수를 그린 영화로 스펙터클하면서도 규모감 있는 연출, 액션과 드라마를 절묘하게 결합한 영웅 서사는 밀레니엄 시대 관객들의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러셀 크로)를 비롯해 5개 부문을 휩쓸었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역사 서사극으로 평가받는 20세기 걸작이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리들리 스콧 감독의 후속편 프로젝트는 ‘에이리언’ 시리즈와 ‘블레이드 러너’로 꾸준히 이어져왔다. 시간이 갈수록 ‘글래디에이터’의 후광이 짙어지는 만큼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컸을 테고, 90대를 바라보는 나이(86세)에 자신과 팬들의 숙원을 하루빨리 풀고 싶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전작 ‘올 더 머니’(2018)와 ‘나폴레옹’ 시나리오를 작업한 작가 데이비드 스카르파, ‘글래디에이터’ 1편과 ‘킹덤 오브 헤븐’(2005)의 촬영감독 존 매티슨 등 지원군들과 함께 새로운 검투사 이야기를 완성했다.


‘글래디에이터 II’(이하 글래디에이터 2)는 전편에서 20여 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 로마는 쌍둥이 폭군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 황제가 다스리는 가운데, 주인공 루시우스(폴 메스칼)는 누미디아 정복에 나선 아카시우스 장군(페드로 파스칼)에게 전쟁 포로로 붙잡힌다. 야심가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의 눈에 띄어 검투사로 발탁된 루시우스는 아카시우스 장군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로마에 입성한다.


‘글래디에이터’ 1편이 막시무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게르만족의 전투 장면으로 시작했듯이, 2편도 압도적인 전쟁 시퀀스로 영화의 포문을 연다. 로마군이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누미디아 왕국을 함락하는 처절한 전투 장면이 리들리 스콧 감독 표 전쟁 대작을 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2편에선 루시우스의 출생을 주요하게 다루는데, 복수를 결심하는 계기와 검투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1편에서 막시무스가 걸어간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글래디에이터 2’가 전편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15세 관람가 등급인 전편의 수위도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2편에선 신체 훼손과 유혈 장면 등 폭력 묘사 수위를 높여 로마 시대의 야만성을 강조했다.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검투사 경기는 확실한 콘셉트를 부여해 오락성을 키웠다. 루시우스가 콜로세움에서 첫 경기를 치르는 장면이나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을 재연한 경기 장면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극대화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러셀 크로의 명성을 이을 ‘글래디에이터 2‘의 주역은 무섭게 떠오르는 신인 스타 폴 메스칼이다. 아일랜드 출신 배우로 전 세계 청춘들을 열광시킨 로맨스 드라마 ‘노멀 피플’(2020)로 스타덤에 올랐다. 2022년엔 배우 메기 질렐할의 연출 데뷔작 ‘로스트 도터’로 영화 데뷔했고, 이듬해 샬롯 웰스 감독의 ‘애프터썬’(2023)에선 젊은 아버지 역으로 2023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연기력까지 입증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노멀 피플’에서 폴 메스칼의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보고 ‘글래디에이터’의 새로운 이름 루시우스 역에 그를 낙점했다. 오디션 과정 없이 짧은 화상 인터뷰만으로 캐스팅된 폴 메스칼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기대와 안목을 저버리지 않는다. 첫 전투 장면부터 진정한 영웅의 모습으로 화면을 장악해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고뇌와 선택 등 인물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연기를 펼친다. 러셀 크로가 연기한 막시무스가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었다면, 폴 메스칼이 연기한 루시우스는 패기 넘치는 젊은 영웅이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페드로 파스칼과 덴젤 워싱턴의 이름은 ‘글래디에이터 2’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다. 페드로 파스칼은 로마군을 이끄는 아카시우스 장군 역을 맡았다. 정의롭고 의협심 강한 캐릭터 성격은 전편의 막시무스 장군을 떠올리게 한다. 실존 인물을 극화한 마크리누스를 연기한 덴젤 워싱턴은 극후반부로 갈수록 존재감을 떨치며 명배우의 위엄을 드러낸다. ‘글래디에이터’ 1편을 본 관객이라면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 황제의 누이이자 루시우스의 어머니, 막시무스와 미묘한 관계였던 루실라 공주를 기억할 것이다. 코니 닐슨이 2편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루실라 역으로 다시 출연해 기존 팬들에게 반가움을 더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장기인 스펙터클한 영상과 화려한 캐스팅으로 무장한 ‘글래이데이터 2’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반면에 이야기 진행 방식과 캐릭터 구성은 전편을 그대로 답습해 새롭지 않은 인상을 남긴다.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구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더라도 똑같은 설정에 볼거리와 배우만 바뀐 듯한 장면들이 속출해 각본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광기 어린 로마시대 이야기가 지금의 시대상과 맞닿아 있어 일말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21세기 관객들은 노예 검투사의 반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영화가 ‘대놓고’ 보여주는 권력의 무모함과 전쟁의 무용함을 어느 정도로 읽어낼지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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