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은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다. 당연히 당국은 과속 단속방안을 백방으로 고민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30여년간 운전면허 보유자로서, 출퇴근시 운전을 하다 보니, 도로상에서의 과속 단속의 변천사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의 행동 변화와 단속기법의 발전에 따라, 교통규제의 철학과 방법론도 서서히 변화해 온 듯하다. 어쩌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높이기 위한 당국의 시각도 이렇게 변해 가지 않을까?
자동차 보급 초창기에 당국은 도로에 '정규속도'라는 것을 정하고, 그 속도를 과하게 위반하면 단속하는 교통행정을 펼쳤다. 과속은 나쁜 것이니, 룰을 지켜야 한다는 강압적 방침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스피드건'인데, 통과 차량의 속도를 바로 알아내는 기기였다. 그래서 특정 구역에 경찰차가 서 있고, 경찰이 서 있으면, 과속 단속을 한다는 것이니 알아서 속도를 낮추는 식이었다. 적발 중심의 행정에 대해 단속 회피라는 편법이 무한 반복된 것이다.
어느 순간 당국은 이런 무작위성 스피드건 단속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스피드건은 설치식 스피드건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단속식 적발방식에서, 교통사고를 줄이는 목적으로 변화하면서, 과속위험지역에 의도적으로 과속추적장치를 설치하게 되고, 아울러 과속단속구간이라는 친절한 표지판을 붙이게 된다. 즉 '공지'를 통해 스스로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인 것이다. 요즘에는 내비게이션이 장착되면서 속도제한표시가 뜨면서 띵똥띵똥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식으로까지 변모하게 되었다. 즉 모든 구간을 대상으로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과속이 위험한 곳을 알려주고 스스로 알아서 속도를 줄이는 유도행정으로 바뀐 것이다.
요즘은 도로 곳곳에 '구간단속'구역이 등장했다. 당국의 현명함이 더욱 발전한 것인데, 일정 지역에서의 과속규제로는 문제해결이 안 되다 보니, 일정 구간을 정해 놓고 구간평균 정규속도를 지키라는 식이다. 여기를 통과하다 보면, 초반에는 멋모르고 과속 질주하는 차들도 어느 순간 주변 차량들처럼 고분고분 속도를 낮춰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규제가 고도화·지능화됨에 따라, 자연스레 일정 구간에서는 통행 속도가 안전 속도로 낮춰지게 되는 것이다.
ESG에 대한 관심도 비슷한 것 같다. ESG가 소개되고 급부상할 때에는 모두들 ESG를 높여야 한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했고, 굿(good), 배드(bad) 기업으로 나누면서 단속식의 ESG 평가가 많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단발적 평가로 ESG가 실현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는 스스로 ESG 수준을 보여주는 정보공개·공시 체계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구간단속'의 사례가 보여주듯, 자발적 공시를 통한 ESG 경영을 하되, 최소한으로 따라야 할 ESG기준을 '법제화'하는 수순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최근 ESG 광풍이 다소 소강기로 접어 들면서, ESG실천에 대한 관심도 수그러든 듯 느껴진다. 하지만 관심이 낮아진 것 보다 당국의 ESG실천방식의 변화가 진일보한 면도 있는 것 같다. 결국 ESG는 당국의 규제영역이 아니라 해당 경제주체의 자발적 달성 노력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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