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풀소 5마리와 함께 찾아온 '귀하신 분'…시골마을 주민들도 반긴 이유

머니투데이 인제(강원)=이창명 기자 | 2024.11.09 08:00

[I-노믹스가 바꾸는 지역소멸]⑧강원 인제(종합)

편집자주 | 흉물 리모델링·님비(기피·혐오)시설 유치와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Innovative Ideas)'를 통해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I-노믹스(역발상·Inverse concept+경제·Economics)'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비영리단체(NGO) 등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역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재래시장과 빈집, 발길 끊긴 탄광촌과 교도소, 외면받는 지역축제 등이 전국적인 핫플(명소)로 떠오르면서 지방소멸 위기를 타개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직접 이런 사례를 발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인구 96명 시골 폐교, 도축 직전 구조된 '꽃풀소' 5마리가 되살린다




구조 당시 꽃풀소 5마리/사진제공=이지연
지난 4일 찾아간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 험준한 산악 지형에 소양강이 둘러싸 외부인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육지 속 섬마을'로 유명하다. 1973년 소양강댐 조성으로 인해 도로가 수몰되면서 외부와 단절됐기 때문이다. 2022년 터널이 뚫리긴 했지만 50년 가까이 단절된 탓에 신월리 인구(10월 기준 96명)는 어느새 100명 밑으로 줄었고, 이 마저도 대부분 70대 전후의 고령으로 구성돼 있다.

1955년부터 마을의 중심을 채워준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도 2014년 입학생 3명을 끝으로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2019년 2월 결국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민들 사이에 골칫덩이가 돼버린 폐교는 최근 마을을 되살려줄 수 있단 기대를 받고 있다. 놀랍게도 폐교에 새로 숨을 불어넣고 있는 주인공은 '꽃풀소'라 불리는 소 5마리다. 엉·머위·메밀·부들·창포란 이름을 가진 꽃풀소는 2021년 시민들의 모금으로 시작한 인천 소 구하기 프로젝트 후원금을 통해 도살장에서 구조된 홀스타인 품종 수컷 5마리를 말한다.
지난 4일 신월리 마을에서 꽃풀소를 돌보는 활동을 하고 있는 추현욱씨의 자녀가 임시축사에서 소들에게 간식을 주고 있는 모습/사진=이창명 기자
일반적으로 축산용 소들은 24개월 안에 도축돼 유통된다. 24개월이 훌쩍 넘어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거나 고기용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경우라도 도살되긴 마찬가지다. 키우는 비용보다 살처분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업적 측면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보잔 이들이 최근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늘고 있고, '팜 생크추어리(Farrm Sanctuary)'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식처'란 뜻을 가진 생크추어리는 보통 축산용 동물들을 도살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돌봐주는 사업을 말한다. 미국 등에선 축산농가를 물려받은 젊은이들이 동물들을 도살해 유통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키우면서 퍼지고 있다. 아예 지금은 각종 교육이나 투어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지현 신월리 청년회장이 꽃풀소들을 돌보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이지연
하지만 팜 생크추어리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구조해온 소를 수십년간 키울 곳이 필요하다. 이를 고민하던 이지연 신월리 쳥년회장(33세)도 구조된 소를 키우기 위한 곳을 찾다 연고도 없는 신월리를 소개받았고, 2022년 6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소 보금자리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꽃풀소들이 30년간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도 된다고 약속해 준 셈이다. 이후 이 회장 뿐만 아니라 동료 6명, 이들의 자녀 2명까지 총 8명이 도시를 떠나 신월리에 정착해 살고 있다.

신월리가 내세운 '꽃풀소가 살고 있는 신월리 달뜨는 마을'이란 사업 개념에 행정안전부 생활권 단위 로컬브랜딩 지원사업 선정 심사위원들도 흥미를 보였다. 지금은 가장 성공적인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됐고, 외신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엔 일본과 대만, 싱가포르 유력 매체들이 직접 마을을 찾아 꽃풀소 5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해갔다. 마을 주민들도 외부인들의 관심이 반갑다. 지난해 방문객도 전년 대비 300명이 넘게 늘어난 1600명이 찾아왔다.

지난 4일 인제군 신월리 폐교된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의 모습, 운동장은 최근 보수한 것이다/사진=이창명 기자
물론 신월리에도 귀농이나 귀촌 체험을 위한 프로그램은 있었다. 하지만 꽃풀소와 이들을 돌봐주는 청년들이 들어오면서 비건체험, 세미나 등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5년간 방치된 폐교가 리모델링을 통해 캠핑과 공연까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학교 건물 옆에 교사와 교직원들이 쓰던 관사는 이미 허물어지고 청년보금자리로 쓰일 예정이다. 근처엔 현재 임시축사에 있는 꽃풀소들이 여생을 보낼 신축 축사가 지어져 방문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만난 신월리 주민들도 "진짜 귀하 신 분들과 소중한 소들이 마을에 왔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꽃풀소에 대한 팬덤이 생기고, 숙박 등을 하는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도 "1000명이 한 번 찾아오기보다는 100명이 열 번 찾아오게 만드는 모델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지역을 찾은 청년이 지역에 지속 정착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찾아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옥스포드 출신이 소 키운다…유학파 빨아들인 시골마을의 매력은?




이지연 신월리 청년회장(동물해방물결 대표)/사진제공=이지연 대표
인구 96명에 불과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 주민들 중엔 영국 옥스포드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가 2명이나 있다. 이지연 신월리 청년회장(동물해방물결 대표)과 전범선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민족사관학교를 졸업한 수재들이다. 이 회장은 고려대 국제학부를 거쳐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환경지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전 이사도 미국 다트머스 대학과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2017년에 동물해방물결 창립한 이들은 2022년 인천에서 도축 직전 꽃풀소 5마리를 구출해 오면서 신월리 주민으로 전입했다. 지난 4일 만난 이 회장은 "저는 누구보다 전공을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이사는 현재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해외 경험이 풍부하고, 동물권에 관심이 높았던 이 회장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팜 생크추어리(Farm Sanctuary)' 모델을 참고해 신월리 마을을 바꿔놓고 있다. '안식처'란 뜻을 가진 생크추어리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동물들을 돌보는 활동이다. 특히 국내에선 지역사회와 결합한다는 점에서 외신들도 주목하는 사례로 꼽힌다. 이 회장은 "해외의 생크추어리 사업은 대부분 축산농가를 물려받은 젊은이들이 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신월리와 함께 하는 사업처럼 마을과 협력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들이 구조해온 꽃풀소들은 현재 350여명의 정기 후원자로부터 모금을 받아 마을에 정착하고 있다.

믿을 만한 청년들이 시골마을에 들어오자 정부와 지역사회도 지원에 나섰다. 행정안전부 생활권 단위 로컬브랜딩 사업을 통해 폐교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되살려 '국내최초 비건마을'로 키워내고, 청년보금자리주택과 신축 축사를 짓는데 총 32억원이 투입된다.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보기 힘든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직접 현장에 가보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 회장은 "꽃풀소와 함께 지역 마을을 되살리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마을에 관계인구를 늘려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지연 신월리 청년회장/사진제공=이지연 대표
마을 주민들도 기대가 크다. 특히 유학파 출신들이 폐쇄적인 시골마을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까란 의문도 적지 않았지만 벌써 2년이 넘게 신월리 주민으로 무리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성공적인 귀촌의 비결로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지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유로움을 허용해주신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청년들이 귀농이나 귀촌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지나친 통제가 꼽힌다.

전도화 신월리 이장은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는 경우를 보면 생각보다 사소한 문제가 많다"면서 "전입해온 청년들이 꼭 마을에 있어야 한다는 그런 강박을 주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가능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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