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찾아간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 험준한 산악 지형에 소양강이 둘러싸 외부인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육지 속 섬마을'로 유명하다. 1973년 소양강댐 조성으로 인해 도로가 수몰되면서 외부와 단절됐기 때문이다. 2022년 터널이 뚫리긴 했지만 50년 가까이 단절된 탓에 신월리 인구(10월 기준 96명)는 어느새 100명 밑으로 줄었고, 이 마저도 대부분 70대 전후의 고령으로 구성돼 있다.
1955년부터 마을의 중심을 채워준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도 2014년 입학생 3명을 끝으로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2019년 2월 결국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민들 사이에 골칫덩이가 돼버린 폐교는 최근 마을을 되살려줄 수 있단 기대를 받고 있다. 놀랍게도 폐교에 새로 숨을 불어넣고 있는 주인공은 '꽃풀소'라 불리는 소 5마리다. 엉·머위·메밀·부들·창포란 이름을 가진 꽃풀소는 2021년 시민들의 모금으로 시작한 인천 소 구하기 프로젝트 후원금을 통해 도살장에서 구조된 홀스타인 품종 수컷 5마리를 말한다.
이렇게 산업적 측면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보잔 이들이 최근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늘고 있고, '팜 생추어리(Farrm Sanctuary)'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식처'란 뜻을 가진 생추어리는 보통 축산용 동물들을 도살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돌봐주는 사업이다. 미국 등에선 축산농가를 물려받은 젊은이들이 동물들을 도살해 유통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키우면서 퍼지고 있다. 아예 지금은 각종 교육이나 투어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팜 생추어리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구조해온 소를 수십년간 키울 곳이 필요하다. 이를 고민하던 이지연 신월리 쳥년회장(33세)도 구조된 소를 키우기 위한 곳을 찾다 연고도 없는 신월리를 소개받았고, 2022년 6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소 보금자리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꽃풀소들이 30년간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도 된다고 약속해 준 셈이다. 이후 이 회장 뿐만 아니라 동료 6명, 이들의 자녀 2명까지 총 8명이 도시를 떠나 신월리에 정착해 살고 있다.
신월리가 내세운 '꽃풀소가 살고 있는 신월리 달뜨는 마을'이란 사업 개념에 행정안전부 생활권 단위 로컬브랜딩 지원사업 선정 심사위원들도 흥미를 보였다. 지금은 가장 성공적인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됐고, 외신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엔 일본과 대만, 싱가포르 유력 매체들이 직접 마을을 찾아 꽃풀소 5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해갔다. 마을 주민들도 외부인들의 관심이 반갑다. 지난해 방문객도 전년 대비 300명이 넘게 늘어난 1600명이 찾아왔다.
물론 신월리에도 귀농이나 귀촌 체험을 위한 프로그램은 있었다. 하지만 꽃풀소와 이들을 돌봐주는 청년들이 들어오면서 비건체험, 세미나 등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5년간 방치된 폐교가 리모델링을 통해 캠핑과 공연까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학교 건물 옆에 교사와 교직원들이 쓰던 관사는 이미 허물어지고 청년보금자리로 쓰일 예정이다. 근처엔 현재 임시축사에 있는 꽃풀소들이 여생을 보낼 신축 축사가 지어져 방문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만난 신월리 주민들도 "진짜 귀하 신 분들과 소중한 소들이 마을에 왔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꽃풀소에 대한 팬덤이 생기고, 숙박 등을 하는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도 "1000명이 한 번 찾아오기보다는 100명이 열 번 찾아오게 만드는 모델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지역을 찾은 청년이 지역에 지속 정착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찾아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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