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헤이즈는 그간 자신이 멜로디를 쓰고 가사를 써 내려간 노래를 늘 앨범 타이틀 곡으로 했다. 하다못해 데뷔곡(‘조금만 더 방황하고’)에서도 가사는 직접 썼던 그가, 지난 6일 발매한 미니 9집 ‘폴린(FALLIN')’ 타이틀곡 크레디트에는 그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빙글빙글’ 같은 파격적인 시도를 할 때도 헤이즈는 제 손길을 완전히 털어낸 적이 없었다.
좀 더 쉬운 길을 택한 변심일까, 아니면 음악적 성숙을 위한 전심일까. 타이틀곡을 제외한 직접 쓴 나머지 곡들을 듣자면, 후자 쪽에 가까워 보인다. 변화가 필요했던 헤이즈는 역할을 분화하는 것으로 진화했고, 갓 핀 싱그러운 꽃이 아닌 정성스레 말려 향취가 깊은 말린 꽃이 됐다.
“떨어뜨린 것을 주우려 몸을 숙이다 남아 있던 작은 조각들마저 왈칵 쏟아져 버릴 때, 반드시 기억해 내야 한다. 오직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하나뿐이라는 걸.”
‘폴린’의 앨범 소개서다. 짧지만 완곡한 이 글은 트랙에 대한 장황한 기술적 서술보다 더 많은 걸 느끼게 한다. 우리는 흔히 노래 듣는 행위를 ‘감상(感想)한다’고 한다. 감상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을 뜻하는 단어다. 노래를 듣는다는 건, 마음을 쓰는 일이다. 헤이즈의 “하나뿐인 마음에”서 시작된 ‘폴린’은, 전심을 다 한 진심의 음률로 듣는 이를 무척이나 마음 쓰이게 한다. 그렇게 헤이즈는 이 앨범으로 오직 자신의 마음만 붙잡는 게 아닌, 청자의 마음마저 붙든다.
헤이즈는 직접 쓴 가사에서 “그 아픔 다 힘없는 과거일 뿐이니까”(‘미래일기’)”라며 저변의 감정을 끌어와 “미소도 습관이 되면 나의 것이 되어줄런지”(‘겉마음’) 같은 아픈 속내를 들추며 진솔함을 드러낸다. 가창은 여전히 가녀린 미성에 잔떨림을 얹어 물망초같이 청초하고, 마디 끝을 가성으로 처리해 이를 더 완곡하게 맺음한다.
앨범명과 동명의 타이틀 곡 ‘폴린’의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노래는 지극히 서정적이지만 애처롭지는 않다. 노골적으로 슬픔을 드러낸 ‘겉마음’이나 ‘점’, ‘내가 없이’ 등의 수록곡과는 달리, “누군가의 마음속에 한 철의 낭만이 되어 준 뒤 녹듯이 사라지는”이나 “어쩔 줄을 몰라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네”라는 가사로 지난 아픔에 대해 달관한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 노래가 1번에 놓여있는 건 조금 아쉽다. 비아이(B.I)가 이 곡을 작사, 작곡한 것도 눈여겨 볼 점인데, 그의 흥행작인 ‘사랑을 했다’의 단출한 사운드 구조나 아픔에 오히려 의연한 반어적 멜로디 구성이 언뜻 서려있다.
헤이즈는 비아이의 멜로디를 자신의 것으로 흡착하며 비슷하지만 다르고, 가녀리지만 강인하며, 여전하지만 변화한 미묘한 차이로 자신의 전심을 꺼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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