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반도체 업계의 반응을 종합하면 국내 기업들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립할 경우 보조금을 주는 이른바 '칩스법' 의 폐지를 우려한다. 삼성전자(텍사스)와 SK하이닉스(인디애나)는 미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조 단위 투자를 집행 중인데, 보조금이 축소·폐지될 경우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실제 칩스법의 폐지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보조금·세액공제 등 혜택 축소는 사실상 상수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공장에 최대 8조 9000억원의 보조금을, SK하이닉스는 62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받을 예정이다.
대중 강경 기조가 반도체 수출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메모리·파운드리 기업은 중국 IT 고객사의 매출 의존도가 높고, 국산 제조 장비의 최대 수출국도 중국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대중 고율 관세(최대 60%)가 현실화되면 중국 세트(완성품)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서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의 매출 감소도 불가피하다.
자동차 업계에도 긴장감이 서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기본관세 10~20%를, 중국산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공약으로 내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 709억달러(약 99조원)로 이중 북미 지역 수출액이 370억달러(약 51조6000억원)에 달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165만대를 판매했다. 이중 절반 이상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어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부담이 큰 상황이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의 폐기도 거론했다. 미국 상원이 IRA 폐지를 반대하고 있어, 현실화 가능성은 낮지만, 어떤 형태로든 전기차 혜택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판매를 늘리기 위해 미 조지아주에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했는데, 전략 변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대차그룹은 HMGMA를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브리드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으로 변경했다. 하이브리드 생산에 보다 집중하면 미국 시장에서의 대응이 어느정도는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HMGMA는 최대 생산능력의 3분의 1까지 하이브리드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 비중이 더 늘어날 수 있다.
배터리 업계 역시 먹구름이 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그동안 북미를 '기회의 땅'으로 간주하고 수 십조원 대의 투자를 단행해왔다. 배터리 3사는 북미 지역에만 연 600GWh(기가와트시) 이상의 생산라인을 갖추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현대차를 비롯해 GM, 스텔란티스, 혼다, 포드 등과의 JV(합작사) 계획도 활발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IRA에 따른 AMPC(생산세액공제) 혜택만 지난 3분기까지 각각 약 1조8000억원, 8200억원 규모를 수령했다.
IRA의 '전면 폐지'는 어려워도 보조금 예산 제한과 대상 차량 축소 등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캐즘으로 전기차 배터리 밸류체인 자체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같은 정책 변화가 K-배터리에게 달가울리 없다. 그럼에도 중국 배터리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노 차이나 존'인 북미 시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 딜레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첨단 기술에 대해 지원을 축소하거나 우리 기업의 해외 수출에 제동을 걸 우려가 있다"며 "미국의 자국 보호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것에 대비해 기술 확보와 생산 거점 다양화 등 여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