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근로자가 승진을 거부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양지훈 변호사 | 2024.11.08 02:05
양지훈 변호사

해외 2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중간 관리자로의 승진을 회피하는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한국일보 2024년 10월 30일자 보도). 기사에 따르면 영국의 Z세대 회사원들 중 52%가 '중간 관리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이들은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보상은 낮다'는 이유로 승진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승진 회피 문화가 해외 일부 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한국의 MZ세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승진을 원하지 않는 자들이 더 많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 주된 이유 역시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러워서'라고 한다.

의도적 언보싱이 개인적 차원의 소심한 저항이라면, 노동조합이 집단적 힘을 이용해 승진을 거부할 권리를 요구한 사실도 있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2024년 단체협약의 교섭 중 과장급으로 진급할 때 임금 체계가 바뀌고 성과급이 차등 지급된다며 근로자의 승진거부권을 요구했다(조선일보 2024년 7월 11일자 보도).

근로자에 대한 승진 처분 권한은 징계권과 함께 사용자의 고유 권한에 속하는 인사권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근로자 개인과 노동조합은 승진을 거부할 권리가 있을까?

개인과 집단을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단체협약을 통해 승진 시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이 위법한 것은 아니다. 어떤 맥락에서는 노조의 단체협약 사항으로 승진거부권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동조합 활동을 혐오하거나 그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사로 노동조합의 간부를 승진시켜 조합원 자격을 잃게 한 경우에는 승진 처분 자체를 부당노동행위로 본 사례에서 그러하다(대법원 1998. 12. 23. 선고 97누18035 판결).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한 특수한 사례가 아닌 경우에도, 근로 조건이 양호하고 고용이 보장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승진을 통해 비조합원 신분이 되어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면, 장기적으로 볼 때 사용자의 승진 처분은 근로자에게 사실상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 있다.


실제 사용자와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사항에 정리해고와 같은 사용자의 침익적 처분에 앞서 노동조합과 협의하는 절차를 두는 사례들이 존재하며, 이것은 이익 단체로서 노동조합의 합법적인 협상력이 발휘된 결과라고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같은 승진거부권을 근로자 개인이 요구한다면 어떤가.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선언하는바, 사용자의 침익적 처분에 해당하는 징계에는 정당한 이유를 요구하며 인사권을 제한 한다. 그런데 수혜적 처분이라 할 수 있는 승진에도 정당한 이유를 요구하거나, 그도 아니면 별다른 사유 없이 근로자가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사용자가 아닌 근로자의 승진 거부에 대한 법원 판단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승진을 하지 않겠다며 그것을 소송으로 다툰다면, 근로자가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사용자의 재량 사항에 해당하는 인사권의 영역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면밀한 인사평가를 통해 소수의 근로자에게 조직에서의 기회와 혜택을 차등적으로 부여하는, 사용자의 가장 중요한 승진 인사권은 일부 근로자들에게 모욕받는 처지가 되었다. 과거 고도 성장을 구가할 당시 조직 문화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현상이 발생한 것인데, 이러한 언보싱은 결국 한국 조직과 개인에게 보이는 퇴행적 단면이 아닐까. 조직은 더 이상 개인의 생존과 안녕을 담보해 주지 못하며 근로자는 재테크와 자기계발로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차가운 현실이 도래했다. 상벌을 통해 회사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직의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경영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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