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긴장 등 공급 역풍이 거센 가운데 세계적으로 이른바 경제안보 논리에 기반한 산업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미중 양강의 틈새에 끼인 우리 역시 그에 따른 이해득실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고, 내부적으로도 성장력 쇠퇴를 만회하기 위해 산업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산업정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대부분 제조업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래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제조업에 기반한 산업화가 필수였고, 안정적 일자리나 소득원 측면에서도 제조업 육성에 대한 향수가 크다. 게다가 국제 교역재로서 공산품은 각국의 이해타산에 따른 보호주의나 통상 마찰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경제안보 차원에서 제조업의 보호와 관리는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오늘날 제조업에 치중한 산업정책의 승산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20세기 중반의 개발경제학에서나 농업을 넘어 제조업으로 도약하는 게 관건이었지만, 지금은 경제 구성이나 동력 차원에서 제조업의 위상이 많이 약화된 상황이다. 국내 통계를 보면 총 산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현재 40% 정도인 반면, 서비스 비중이 50%에 육박한다. 또 부가가치 기준으로 보면 제조업 26% 대 서비스 64%로 격차가 확대된다. 나아가 고용 비중은 최근에 15% 대 72%까지 벌어진다.
이처럼 제조업은 생산이나 부가가치 및 고용창출 효력에서 서비스 부문에 크게 밀린다. 자동화 등과 같은 노동절약적 기술혁신, 또 글로벌 차원의 경쟁 심화 등이 배경이다. 이미 제조업 분야는 그동안 중국이 '글로벌 제조업 머신'으로 부상하면서 더 이상 좋은 기회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즉, 세상은 중국과 같은 '제조업 거인' 2곳을 허용할 여유가 없다. 또 다른 중국을 꿈꾸는 인도 등의 신흥 강국은 물론 미국 등 서구의 제조업 육성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기회는 서비스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 세계화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크고, 그 핵심 고리인 세계 교역은 고점을 지나 둔화세에 접어든 모습이다. 그러나 서비스 교역은 오히려 가속적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세계 전체 교역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남짓한 수준에 그치고, 국내도 17%에 불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조업 위주의 구식 산업화가 점차 포화 상태에 들어선 가운데 국제적으로 교역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서비스의 개발 잠재력이 주목된다.
물론 서비스 성장에 순기능만 수반된 것은 아니다. 서비스 부문에는 양질의 일자리나 소득 안정 등의 기준으로 여전히 취약한 직종이 많다. 하지만 그 대안이 제조업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서비스의 부가가치와 질적 수준, 또 근로 여건 등을 제고하기 위해 보다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금융, 정보기술통신, 각종 사업서비스 등의 이른바 '현대 서비스'(modern service)는 세계적으로도 기회가 여전히 많다.
서비스가 우리에게 산업정책, 곧 생산적인 경제발전 정책의 핵심이었던 적은 거의 없다. 이제 제조업 특권화에서 벗어나 좋은 산업, 일자리는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