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강행하는 게 맞겠습니다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금투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넉 달 넘게 이어진 내부 논란 끝에 결국 정부·여당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이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이 어렵고,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투자자들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결단의 배경을 설명했다.
상황 변화에 맞춘 실용주의적 태도가 돋보였다는 평가가 여의도에서 나왔다. 그러나 철학 없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란 비판도 함께였다. "눈앞의 표만 바라본 상인의 현실감각"(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 "책임정치의 모습이 아니다"(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라는 비판이 야권에서 쏟아졌다. 금투세는 민주당이 여당이던 2020년 입법을 주도한 정책이다. 2022년 한 차례 유예 결정을 거쳐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었다.
진영의 원칙과 가치에서 벗어나 보더라도 이번 금투세 폐지 결정은 4년간 이어져 온 입법 논의를 한순간에 백지화한 것이다. 자본시장 정책의 신뢰성을 무너뜨렸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시행과 유예·폐지를 오갔던 모호한 언행과 갈지자 행보 속에서 이어졌던 시장 혼란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당초 금투세 도입에 합의했던 여권 역시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권이 포퓰리즘이란 우려의 시선을 벗겨내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정치다. 여야가 금투세 폐지에 뜻을 모은 것을 계기로 주식 세제 전반을 원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후진적 지배구조와 주주 환원 문제도 긴 호흡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다. 앞으로 1년여 동안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지금이 국가적 과제를 논의할 적기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여당은 그간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며 자본시장 밸류업(가치 제고)을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도 금투세 폐지 결정을 전하면서 증시 선진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공언했다. 양당 대표는 지난 9월 회담에서 주식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정치권의 약속이 또다시 공염불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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