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들어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내수 회복세는 더디고, 수출은 7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이로 인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갈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동 정세, 북한까지 가세한 우크라이나 전쟁, 급격한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시대로의 진입 등 예기치 않았던 부정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며 향후 우리 경제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가 흔들리는 상태에서 한두 가지 불안 요인이 가중되면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작은 경제 문제들이 겹쳐 큰 경제 위기로 발전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겹쳐 나타나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말한다. 원래는 위력이 강하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만날 때 위협적인 태풍으로 발전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했다. 경제에서도 작은 경제 문제들이 모이거나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겹쳐 크고 심각한 경제 위기로 발전하는 현상을 퍼펙트 스톰이라 쓰게 되었다.
미국은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모두 보호무역 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고율 관세와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우리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하고, 중국은 현재 부동산 침체와 미국, 유럽의 경제제재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며 경기 부진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면서 수출시장 축소가 불가피하다. 이렇게 글로벌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두 나라의 상황이 급변하면서 우리 경제 전반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미국·캐나다·멕시코협정(USMCA)을 전면 개편하고, 한·미 FTA,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 약속한 무관세나 각종 투자 보조금도 백지상태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미국이 강조했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나 '니어쇼어링(near-shoring)'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프렌드쇼어링은 미국에 생산시설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 미국의 동맹국에 생산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접한 우방국에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경우에는 니어쇼어링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제는 무조건 미국 본토에 투자해서 일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으로, 결국 시장이 있는 곳에 직접 투자하라는 마켓쇼어링(market-shoring)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캐나다나 멕시코 등에 공장을 갖고 있거나 건설을 추진하던 삼성, LG, SK, 기아 등 많은 국내 기업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미국 통상 정책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가 집권하면 우리나라는 53억∼448억 달러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중국은 금년 성장률 목표인 '5%' 달성이 어려워지자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준금리를 7월에 이어 10월에도 또다시 인하했으며, 이번 주에 열리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195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특별 국채 발행을 공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금액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추가로 늘릴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푸는 방법을 총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 경제 상황이 안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기 침체의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은 한국의 래거시 반도체 기술을 상당히 따라잡았을 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전 세계에서 1340만 대의 신차를 팔아 1190만 대를 판매한 미국을 앞질렀다. 중국이 미국을 앞지른 것은 지난해가 처음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판도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년 기준으로 전 세계 판매량 1위는 29.1% 시장점유율의 일본이, 24.9%인 EU가 2위, 17.9%로 중국이 3위, 미국은 15.2%로 4위이며 한국은 점유율 8.5%로 5위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자동차 수출에 있어서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전기차 시장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중국 업체들이 러시아 등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결과다. 중국의 자동차 수출은 전년대비 60% 증가했으며, 일본은 15% 증가에 그쳤다. 중국의 자동차 수출은 2018~2020년 100만 대 안팎에서 2021년 200만 대, 2022년 300만 대, 2023년 500만 대로 급증했다.
이렇듯 중국이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 유망 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지닌 것이 증명되면서, 중국 시장에서 점차 우리의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둘 중 하나의 시장만 고르라는 압박도 거세다. 잘못하면 우리 양대 수출시장의 반쪽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향후 미국 무역정책이 안보 우선주의적으로 변화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장기화되면서 한국이 벼랑 끝에 몰릴 위험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을 미·중 갈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나라로 꼽았다.
지금 한국은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불안 등 대외 불투명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2개의 전쟁 격화도 먹구름을 드리운다. 언제나 유가가 폭등할 수 있다. 최근 달러화 강세도 고민이다. 환율이 급등하면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국내 경기 부양을 위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모처럼 안정세에 접어드는 듯했던 소비자물가가 다시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수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도소매·숙박·외식업 등 자영업은 너무나 어렵다. 대기업들은 해외에 공장을 짓고, 국내 일자리를 만드는 중소기업은 상황이 어려워 실업률도 걱정이다. 경제 반등의 모멘텀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급기야 한국은행은 금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췄으며, 내년 성장률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경제 부양과 구조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막대한 재정적자와 세수 펑크로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펼칠 여력이 없다. 부동산 가격이나 물가를 고려하면 추가적인 금리 인하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던 자동차, 철강 등 전통적 제조업의 경쟁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대로 가면 결국 퍼펙트 스톰을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중국과 미국에 치우쳐 있던 수출 영토를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급부상한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스윙 컨트리'로 다변화해야 한다. 동시에 바이오, 로봇 등 미래 혁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민간기업을 지원하고,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해야 한다.
자연의 겨울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현명하게 대처하면 경제의 겨울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폭풍이 오고 있다. 이제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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