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계지식재산기구 한국사무소를 기대하며

머니투데이 김완기 특허청장 | 2024.11.05 05:50
김완기 특허청장/사진제공=특허청
1912년 발간된 미국 소설 '키다리 아저씨'는 고아원에서 자란 주인공이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대학교육까지 지원 받으면서 나중에는 그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되는 자립과 성장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와 국제기구 사이에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1979년 UN의 지식재산 전문기구인 WIPO(세계지식재산기구)에 가입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800달러에 불과했기에 회원국 분담금은 가장 낮은 수준인 2500 스위스 프랑(약 54만원)을 납부했다. 1977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외청으로 이제 막 독립한 특허청은 심사관 50명·예산 5억원에 불과한 작은 조직이었고 특허심사에 필요한 선행기술조사를 WIPO를 통해 선진국으로부터 지원받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WIPO와 UNDP(유엔개발계획)로부터 지원받은 90만달러가 1990년까지 진행된 특허청 현대화 계획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은 WIPO의 권고로 1984년 국제특허출원제도인 PCT(특허협력조약)에 가입했다. 이후 우리 경제와 산업의 고속성장에 힘입어 국내 특허출원과 PCT 출원이 급격히 증가했고 특허청의 특허행정 수준 역시 일취월장하면서 1997년 WIPO 총회에서 10번째 PCT 국제조사기관으로 지정받게 된다. 국제조사기관은 일정 수준의 특허행정 역량을 갖춰야하는데, 당시 특허청의 역량이 궤도에 올랐음을 상징하는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2004년 WIPO에 한국신탁기금을 설치하고 연 20억원씩을 공여해 개도국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6년에는 특허청 국제지식재산연수원이 WIPO 공식연수기관으로 지정돼 개도국 공무원들에게 우리의 전문지식과 발전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한국은 현재 46만 스위스 프랑(약 7억원)의 분담금과 국제출원 수수료 등을 통해 WIPO에 540억원(약 7%)에 이르는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국장급 고위직 2명을 포함, 30여명의 한국인이 WIPO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과 WIPO의 협력은 올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방한한 다렌 탕 WIPO 사무총장은 특허청과 WIPO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서로 직원을 상대 기관에 파견해 일정기간 근무케 하는 '인력교환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그해 7월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는 WIPO와 회원국 간 최초의 협력사례로 WIPO 내에서 한국의 중요성과 입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따라 특허청 직원이 지난 5월 WIPO 본부에 파견돼 근무 중이며, WIPO 직원 또한 지난달 14일부터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며 WIPO 국제출원 서비스의 민원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한국이 선진 5개 특허청을 일컫는 'IP5'이고 PCT 출원 세계 4위의 지식재산 강국이란 사실을 모르는 WIPO 직원은 없다. 그러나 WIPO 한국사무소가 부재한 지금, 스위스 제네바에서 근무하는 WIPO 직원이 한국 WIPO 서비스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 파견된 WIPO 직원이 한국 이용자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해결하는 경험을 한 후 본부로 돌아간다면 WIPO 안에서 한국사무소의 신설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겠는가. 이 프로그램은 1년 이내로 파견자를 교체하게 돼 있어 점점 더 많은 WIPO 직원들에 의해 이와 같은 분위기 조성은 확산될 것이다. 첫 걸음을 내딛은 이 인력교환 프로그램이 초석이 돼 머지 않은 미래에 한국 서비스 이용자들의 염원인 WIPO 한국사무소가 설치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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