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채무자·채권자 상생의 기반, 채무자보호법에 거는 기대

머니투데이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 2024.11.04 06:00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셰익스피어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급전을 빌려주며 "빚을 갚지 못하면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베어가겠다"는 조건을 건다. 불행하게도 안토니오는 그의 전 재산을 실은 배가 바다 한 가운데서 침몰하는 바람에 빚을 갚지 못했고, 샤일록은 그의 살을 베어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관은 "살 1파운드를 베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판결해 샤일록은 실질적으로 패소한다. 이 작품 속 이야기는 다양하게 해석되곤 하지만 기계적인 채권 회수가 과연 최선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채무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빚으로 연체가 장기화하면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오히려 회수가치가 낮아지는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가 성실 채무상환자의 의욕을 꺾지 않으면서도 취약 채무자에 합당한 채무조정의 기회는 제공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그간 채무자 보호와 재기 지원을 위한 여러 제도가 도입됐다. 2002년 출범한 신용회복위원회, 2004년 도입된 법원 개인회생 제도가 대표적이다. 신용회복위원회·법원과 같은 공공부문을 통한 채무조정 기본적인 틀은 갖춰 운영돼 왔지만 이미 부실이 발생하고 심화한 후 사후적으로만 정리하고 구제하는 체제에 그친다는 아쉬움과 한계가 있었다.

지난달 17일부터 시행된 개인채무자보호법은 크게 보아 채무자와 금융회사의 자체적인 채무조정 제도화, 연체에 따른 과다한 이자부담 완화, 과도한 추심 관행 개선의 내용을 담는다. 첫째, 3000만원 미만 대출을 연체 중인 채무자가 간편하고 신속하게 재기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의 자체 채무조정을 제도화했다. 둘째, 5000만원 미만의 대출을 연체한 채무자가 이자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아직 실제로 연체하지 않은 부분의 연체 가산 이자는 부과하지 않도록 했다. 셋째, 연체 채무자가 일상생활이 파괴될 정도의 추심에서 벗어나 빚을 갚을 최소한의 안정적 생계 활동은 할 수 있도록 추심 횟수를 7일간 최대 7회로 제한하도록 했다.


채무자가 이러한 보호 수단을 방패 삼아 대출금을 일부러 갚지 않거나 연체를 장기화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대출금을 연체했을 때 신용도 하락이나 금융거래 제약과 같은 불이익을 감안한다면 소액채무자가 고의로 대출금을 연체할 유인이 아주 크지는 않을 것이다. 또 금융회사는 스스로 정한 내부기준에 따라 채무자의 소득이나 재산 등 상환 능력을 감안해 채무자가 신청한 채무조정 요청을 수용할지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위기의 상황에서 채무자의 과도한 채무상환 부담을 완화하고, 경제적 재기를 위한 최소한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신복위-법원'의 하류 단에만 그쳤던 채무조정 체계를 '금융회사-신복위-법원'에 이르는 공-사와 상류-하류에서 작동하는 채무조정 체계로 완성해 금융회사와 모든 국민이 채무조정의 혜택을 보고 사회적으로도 더 큰 부실을 예방하는 '상생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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