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투자를 유치할 때 투자자와 계약서를 작성하며 사업을 구체화하고 성장할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투자계약서는 스타트업의 장밋빛 미래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여러 장치도 포함된다. 계약 당시에 이런 장치들을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스타트업의 투자계약서를 검토하면서 자주 듣는 말은 자신들이 쓴 계약서가 '업계에서 사용하는 표준계약서'라는 말이다. 표준계약서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한국엔젤투자협회, 한국엑셀러레이터협회가 공동으로 작성한 '표준 벤처투자계약서'를 의미한다. 실제 체결된 계약서를 살펴보면 기본 틀만 해당 계약서를 사용하고 투자자가 여러 조항을 수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사례에서는 소위 '독소조항'이라고 할만한 내용도 있다. 스타트업은 투자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투자자가 제시한 투자계약서를 그대로 날인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스타트업 대표가 일부 조항이 부당하다고 지적해도 투자자는 통상적으로 해당 조항으로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답변한다. 문제 삼는 경우가 없는 조항이라면 삭제해도 무방할 텐데 투자자가 실제로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사례는 드물다.
특히 투자금의 상환이율, 배당이율, 위약벌 등의 경우도 책정하는 비율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투자자가 책정한 비율에 대해 그 근거를 명확히 설명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독소조항'은 회사가 크게 성장했을 때 분배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어려워졌을 때 스타트업의 고난을 가중시킨다.
최근 들어 이런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투자 빙하기'가 찾아온 탓이다. 투자를 유치하지 못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늘면서 투자계약서에 숨어있던 '독소조항'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투자자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투자계약서 위반을 문제 삼으며 해당 스타트업 및 대표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등을 행사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독소조항의 경우 주주평등원칙 위반 등의 이유로 무효 판단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법원에서 독소조항이 무효라는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투자자와 수년간의 소송을 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투자자가 제기한 소송을 대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같은 소송은 대부분 스타트업의 운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소송 비용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다.
투자계약서는 투자와 회수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장밋빛 미래와 엄혹한 현실을 동시에 담고 있다. 투자계약서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만큼 초기 스타트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투자자와 스타트업 간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더불어 스타트업은 중요한 계약서일수록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야 향후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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