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시즌 내내 이범호(43) 감독의 '맏형 리더십'이 KIA 타이거즈의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범호 감독 이끄는 KIA는 지난 2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펼쳐진 2024 신한 SOL 뱅크 KBO 포스트시즌(PS)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7-5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역대 12번째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KIA는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 시절인 1983년부터 시작된 '한국시리즈에서 지지 않는' 타이거즈 불패 신화를 이어가게 됐다. 타이거즈 7번째 통합 우승(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9년, 2017년, 2024년·단일리그 기준)이기도 했다.
2011년 KIA로 이적해 2017년 선수로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던 이범호 감독은 13년 뒤 타이거즈 사령탑으로서 또 한 번의 우승을 이끌며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17일 정규시즌 조기 우승에 이어 한국시리즈도 제패하면서 2005년 선동열, 2011년 류중일(이상·삼성)에 이어 취임 첫해 통합 우승을 차지한 역대 3번째 감독이 됐다. 또한 만 42세 11개월 3일로 2005년 선동열(당시 만 42세 9개월 9일)에 이은 취임 첫해 통합 우승을 달성한 수장이 됐고, 김태형(OB-두산), 김원형(SK-SSG)에 이어 선수와 감독으로 한 팀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령탑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이범호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감독감으로 불렸다. 자연스레 2019시즌 은퇴 후 일본프로야구(NPB) 소프트뱅크 호크스 연수코치, 미국프로야구(MLB) 필라델피아 필리스 연수코치 등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2021시즌 KIA 퓨처스 총괄코치로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감독 이범호는 예상 밖의 상황에서 시작됐다. 그는 2022시즌부터 올해 스프링캠프 시작 직전까지 1군 타격코치를 역임 중이었다. 그러다 전임 김종국 감독이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받자, 호주에서 화상 면접을 통해 제11대 사령탑으로 결정됐다. 올 시즌 최연소이자 프로야구 역사상 첫 1980년대 감독의 탄생이었다.
이범호 감독 역시 최근 감독감이라 평가받는 선수 출신 사령탑이 으레 그렇듯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지난 3월 취임식에서 그는 "내가 감독으로서 추구하고 싶은 야구는 '웃음꽃 피는 야구'"라면서 "'이건 안돼, 저건 안돼'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봐'라는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겠다. 감독으로서 우리 팀이 이뤄내야 할 목표를 정확히 제시하고, 그 목표 아래서 선수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많은 사령탑에 취임 때의 말을 지키기란 어려웠다. 야구가 가장 변수가 많은 스포츠라 불리기도 하지만, 막상 사령탑이 돼서 겪는 다양한 상황은 많은 감독의 초심을 잃게 했다. 초보 사령탑에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터.
그러나 이범호 감독은 달랐다. 선수 시절 느끼고 경험한 바를 살려 감독이 하고 싶은 야구가 아닌 선수가 하고 싶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최형우(41), 양현종(36), 나성범(35), 김선빈(35) 등 베테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김도영(21), 곽도규(20) 등 어린 선수들에게는 믿음을 줬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7월 김도영을 향한 문책성 교체와 양현종의 조기 강판이었다. 김도영에 따르면 시즌 시작 전 이범호 감독은 그에게 확실하게 주전 선수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 말은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올해 김도영의 실책이 30개에 도달하는 상황에서도 이범호 감독은 언론을 통해 "어린 시절 나도 그랬다"며 감쌌다.
그런 이범호 감독이 단 한 번 문책성 교체를 한 적이 있었다. 지난 7월 3일 대구 삼성전이었다. 당시 김도영은 1사 1, 2루에서 삼성의 이중 도루 때 2루 주자의 두 차례 런다운 상황에서 안이한 판단으로 득점을 허용했다. 0-4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음 수비 이닝에 김도영을 교체하며 강렬한 메시지를 줬다. 그 뒤로도 김도영은 실책을 꾸준히 했으나, 이범호 감독은 끝까지 그를 주전 3루수로서 기용했다.
이닝 소화에 책임감이 큰 양현종도 이범호 감독의 강단 있는 결정을 받아들였다. 7월 17일 광주 삼성전에서 양현종은 KIA가 9-5로 앞선 5회 2사 1, 2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아웃 카운트 하나면 승리 투수 요건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이범호 감독은 양현종 대신 김대유를 내보내는 결정을 관철했다. 결국 구원등판한 김대유가 김영웅을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KIA의 리드는 지켜졌다. 선수 교체까지 꿈쩍 않던 이범호 감독은 상황이 종료되자 양현종을 뒤에서 포옹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도 그 고민을 더그아웃과 선수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경기 중 대타나 실책을 이유로 교체되는 야수의 기분, 위기를 스스로 매조지고픈 투수들의 마음을 헤아렸기에 더욱 그 결정에 신중했고, 판단 후에는 과감했다.
시즌 끝까지 보여준 이범호 감독의 모습은 선수들이 믿고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유가 됐다.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양현종은 "감독님은 지금도 형 같다. 항상 형처럼 편하게 해주신다. 베테랑에게는 항상 주문을 많이 하시고 어린 선수들에게는 정말 뛰어놀라고 하셨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형우는 "내가 전부터 다른 선배들은 얘기 안 해도 이범호 감독님처럼 되고 싶다고는 얘기해 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옆에서 형님처럼 챙겨주신다"며 "내가 나중에 지도자가 돼서 꼭 하고 싶었던 감독상(像)이다. 그걸 이범호 감독님이 먼저 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이범호 감독도 스스로 한결같았던 부분에서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건 잘 지킨 것 같다. 선수들이 감독 때문에 눈치 보고 못하는 분위기는 없어지도록 하겠다. 눈치를 보다 보면 선수들이 제 기량을 못 펼치고 그만둔다. 젊은 선수들이 더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는 지도자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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