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2’ 연상호 감독 "유아인→김성철, 상당히 어려웠어요"[인터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 2024.10.30 13:32
연상호 감독 / 사진=넷플릭스


“‘지옥2’는 시청 시간보다 시청 후 시간이 중요한 작품.”


시즌2로 돌아온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의 연상호 감독은 흥행 같은 숫자가 아닌 작품이 함의하고 있는 이야기에 열중해 작업했다. 확실히 시즌2를 보고 나면 머릿속에서 갖가지 물음이 터져 나온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사유를 진하게 자극하는 작품이다.


천사의 고지와 시연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두고 자신들만의 정의를 쫓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낸 ‘지옥’ 시즌1은 사회적 혼란을 겪는 인간들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들추며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시즌2는 천사의 고지와 사자의 시연이 만연화된 혼란스러운 사회 속, 부활자의 등장으로 인한 혼란과,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새진리회, 화살촉, 소도의 대립으로 더 장황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지옥2’는 제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닮아있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제가 살면서 느낀 부분들에 대한 은유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죠. 이처럼 제가 겪는 현실 세계의 화두와 시즌1의 화두를 동시에 담아낸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옥’ 시즌1에서는 죽음 고지와 사자 등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발생하고, 극 주요 인물인 정진수가 이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 거짓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잖아요. 거기에서 시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시즌2에서는 그 역할을 이수경(문소리)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어갔어요. 이수경이 부활자를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그것이 세상을 더 안정적으로 만든다고 여기잖아요. 시즌1과 2에서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존재가 민혜진(김현주)이고요.”


연상호 감독 / 사진=넷플릭스


‘지옥’ 시즌1은 공개 당시 93개국 TOP10에 랭크되며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고, 여러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작품성에 대한 호평을 받았다. ‘지옥2’ 역시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오늘의 대한민국 TOP 10 시리즈’ 부문 1위로 직행했고, 공개 3일째에는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시리즈(비영어) 부문 5위를 찍었다.


“‘부산행’을 찍었을 때 생각한 것보다 흥행했어요.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작품이지만 그 이후로 상업성, 대중성을 늘 생각하면서 작업하게 됐어요. ‘부산행’ 이후 저와 작업하려는 투자자들은 대중성 때문이지 저의 예술성을 위해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지옥2’ 작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숫자에 대한 이야기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어서였어요. 상업적인 생각보다는 세계관에 더 집중하면서 작업할 수 있었죠.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 무책임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10번 중 1번 정도는 그럴 수 있진 않을까요(웃음). 제 안에 제대로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는 판 같은 게 ‘지옥2’ 작업이었어요. 그 기회가 생겨서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해서 떠들썩하게 이야기까지 해주시니 운이 좋다고 느끼고 행복합니다.”


‘지옥2’는 캐스팅 이슈도 있었다. 시즌1에서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 역을 연기한 유아인이 마약 상습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배우 교체가 불가피했다. 다행인 건 시즌1과 시즌2 사이의 시간적 여백이 길었다는 것이고, 불행인 건 유아인이 엄청난 임팩트로 정진수를 연기했었다는 점이었다. 누가 와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상당히 어려웠어요. 시즌1에서 유아인이 워낙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사실 대중이 정진수라는 인물을 인식하는 건 시즌1의 배우인 거잖아요. 유아인은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되게 많이 발휘하면서 연기했는데 새 배우에게 그걸 흉내 내라고 하기 힘들었어요. 김성철이라고 하는 굉장히 가능성 높은 배우가 자신의 커리어로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는 선택을 해줬다는 것에 대한 걱정을 본인과 많이 이야기 하기도 했고요. 김성철은 자신의 정진수를 원작에서 찾았어요. 원작의 정진수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더 집중했어요. 김성철 배우가 뮤지컬에서 같은 결의 역할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것만큼의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연상호 감독 / 사진=넷플릭스


시즌2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건 문근영이 극에서 보여준 의외성이다. 문근영은 극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중 종교에 깊게 빠지게 되면서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오지원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 오지원은 정진수의 말에 집착적으로 빠져들다가 믿음이 심화하고 뒤틀려 화살촉의 일원이 되는데, 문근영은 광신도의 광기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연상호 감독은 애초 문근영이 지닌 가능성을 믿었고 “문근영이라는 배우가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신을 채워갔다.


“문근영은 예전부터 상당히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내적으로 잘 다져진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느낌을 가장 강하게 느낀 건 ‘기억의 해각’이라는 작품이었어요. 그 작품에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배우로서의 의지 같은 것들이 많이 보였어요. 문근영이라는 배우한테 감동을 받았어요. 그 모습이 오지원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함께 작업하면서 문근영이라는 배우가 부활하기를 바랐어요. ‘문근영이 시청자에게 사랑받을 것을 예상했냐’라고 묻는다면 ‘사랑받기를 바랐다’라고 답할 거예요.”


연상호 감독은 ‘지옥’에 대한 남다른 청사진도 꿈꾸고 있다.


“사실 이뤄지기 힘든 바람입니다만 ‘건담’처럼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건담’이라는 우주에서 파생한 수많은 이야기처럼 ‘지옥’의 세계관을 가지고 많은 작품들이 시도됐으면 좋겠어요. ‘지옥’을 저 혼자 쥐고 있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창작자가 ‘지옥’ 세계관에서 펼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오히려 정설이 될 수 있는 세계관을 담아줬으면 좋겠어요. 꼭 영상 포맷이 아니더라도 만화가 될 수도 있고요. ‘건담’의 수많은 팬 소설도 있는 것처럼요. 그런 식으로 발전되길 바라고 있어요.”


연상호 감독 / 사진=넷플릭스


줄곧 애니메이션만 내놓던 연상호 감독이 100억 원을 들인 첫 실사 영화 '부산행'을 공개했을 때, 평단은 그를 들어 '칼 맑스'라 불렀다. 영웅으로 표상되는 단순한 좀비 이야기가 아닌 현실주의가 담긴 세계관으로 공포심을 만들어낸 덕택이었다. ‘지옥’ 시리즈는 이 같은 연상호 감독의 장기가 뚜렷하게 담긴 작품이다. 이야기의 뿌리로는 지극한 현실주의를 담고, 천사나 사자 같은 환상으로 화려한 곁가지를 친다. 서양학을 전공한 예술학도인 만큼, 작품 속에서 펼쳐내는 그의 세계관은 비상한 창작력과 만나 예술성까지 품는다.


“시즌3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갖는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요.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 장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압도적 세계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원천이라고 생각해요. 그 장르 특성이 그렇죠. 많은 분이 천사 고지의 기원에 대해 왜 설명해 주지 않는가에 대해서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그 감정들이 이 장르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시즌2 작업할 때 궁금증이 거대해지길 바랐지 축소되길 바라지는 않았어요. 시즌3이 나온다면 궁금증이 더 거대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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