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국내 비만치료제 비대면 처방은 지난해 12월 대비 약 18배 폭증했다. 이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국내 출시됐다. 비만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국내 기업의 주가는 줄줄이 급등했다.
국내 바이오 업종은 오랜 기간 주식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의 고금리 기조도 한몫했다. 그럼에도 우리 바이오 기업 스스로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은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주식시장으로부터 외면받고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여러 바이오가 자금난에 시달렸다.
그래서 비만치료제 열풍이 더 반갑다. 비만치료제 인기에 힘입어 모처럼 바이오산업에 기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미래가치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바이오에 기대감은 필수적인 불쏘시개다. '기적의 치료제'로 불리는 비만치료제는 주식시장 투자자의 관심을 바이오로 되돌릴 카드로 손색없다.
효과는 확실하다. 비만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했단 이유로 최근 주가가 상승한 바이오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지독한 주가 하락에 시달리던 바이오 업종에 그야말로 단비 같은 역할을 했다. 주가가 오르면 궁극적으로 기업 운영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조달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만치료제는 허상이 아닌 실체가 눈에 보이는 신약이라 더 의미가 있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비만치료제는 모두 GLP-1(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 계열 약물이다. GLP-1 계열 약물은 1980년대부터 당뇨치료제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201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삭센다' 역시 GLP-1 계열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이란 뜻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도 일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다만 걱정스러운 대목도 있다. 최근의 비만치료제 개발 열풍은 마치 데자뷔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 국내 바이오 기업은 너도나도 코로나19(COVID-19)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더나와 화이자의 성공을 본 정부도 많게는 수백억원을 지원했다. 관련 기업의 주가는 요동쳤다. 하지만 셀트리온의 '렉키로나'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찾기 어렵다. 결국 "바이오는 다 사기 아니냐"는 목소리에 힘을 보탰을 뿐이다.
전 세계적 비만치료제 인기는 우리 바이오에 어렵게 찾아온 기회다. 팬데믹 때처럼 말뿐인 허상으로 끝나선 안 된다. 독자 기전이나 제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거나 약효 지속 기술처럼 글로벌 제약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특별함으로 활로를 뚫어야 한다. 속도도 중요하다. 또 한 번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의 전철을 밟는다면 우리 미래산업 K-바이오의 비상은 언감생심이다. 비만치료제 훈풍이 K-바이오 성장의 돛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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